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이광래 우미건설 회장, 2019 건설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우미건설 이광래 회장(사진)의 이력은 독특하다. 40세에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18년간의 군 복무로 연금을 받는 안정적인 생활도 가능했지만 이를 마다하고 퇴직금을 일시불로 수령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

세계일보

그 이후 승승장구한 것도 아니다. 퇴직금 180만원 중 150만원을 들여 고향 친구와 전자부품회사를 차렸지만 동업자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사업이 망했다. 다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양돈 사업을 시작했지만 돼지콜레라가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다시 정리해야 했다.

군인이라는 신분을 탈피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으나 두번의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인생을 건 도전을 택했다. 주택 사업이었다.

주택 사업을 위해 먼저 찾은 곳은 예비군이었다. 폭넓게 사람을 사귀고 정보를 얻기 위해 예비군 중대장에 지원했다. 낮에는 예비군 중대장으로 일하고 저녁이면 주택 관련 건설사업에 대해 공부했다.

1982년 지인들에게 투자받아 삼진맨션을 세웠다. ‘주식회사 우미(우미건설 전신)’를 세우고 처음 아파트를 지은 것이 1986년, 이 회장이 54세 때였다.

사업 초기에는 설계를 배우기 위해 거의 모든 견본주택을 다녔다. 수상하게 여긴 견본주택 직원들과 실랑이도 많았다. 자금수급계획도 직접 만들었다. 사업에 대해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정과 보완을 거쳐 직접 ‘3개년 자금수급계획서’를 창안했다. 계획 안에는 모든 일정 전략 자금, 완공 후 입주 전망 및 다른 아파트와의 비교분석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회장은 주택 사업에 완벽히 ‘몰입과 집중’했다.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늦게 까지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사업은 지속적으로 확장됐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대보증을 섰던 4개 건설사가 부도나 이를 모두 책임져야 했을 때도 있었다.

광주 서구 풍암지구에 1,200가구 공공 임대아파트 공사를 막 시작했을 때는 외환위기가 왔다. 시장에 돈이 말랐다. 건실한 주택기업들이 일제히 무너졌다. 하지만 공사를 지속하기로 결정했고 100%로 분양을 완료했다. 오히려 외환위기 직후 목포에 주택이 부족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사업을 확장했다. 목포 택지 3필지를 공급받아 1,500가구 완판을 기록했다. 위기를 기회로 우미건설은 전국적인 건설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우미건설은 이제 연매출 2조원(계열 포함)을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국 7만호가 넘는 주택을 공급했고 대규모 국책사업인 새만금매립사업과 택지조성사업 등 국가 및 사회기반시설 공사에도 참여했다.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총 9,600여 세대의 임대아파트 공급,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도 진행했다.

기업을 경영하며 다양한 상과 표창을 받았지만 이 회장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입주민의 만족이다. 2008년 경기 동탄신도시 ‘우미린 제일풍경채’ 입주민들이 아파트 품질에 만족해 단지 내 이 회장을 위한 기념비를 세워줬다. 감사패 전달은 간혹 있지만 기념비는 전무후무했다.

이 회장은 경영은 정도경영, 원칙경영으로 대표된다. 아무리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협력회사에 대한 자금 결제를 미루지 않았다. 깨끗한 납세를 자랑으로 여겨 2005년 성실납세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총 5회의 성실 납세 표창을 받았다. 이 회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고비마다 큰 도움을 주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다양한 사회공헌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일찍부터 국가유공자 주거개선사업에 참여해 2011년 국가유공자 주거개선 공로 대통령 표창 등 총 11회의 국가유공자 주거개선 표창을 받았다. 또한 2006년 ‘희망의 집 고쳐주기‘ 감사패, 2004년, 2005년 ’사랑의 집 수리‘ 감사패를 받은 바 있다.

이 회장은 20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개최된 ‘2019 건설의 날’ 행사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82년 주택사업을 시작한 이래 주택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초심을 지킨 37년에 대한 인증으로 해석된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