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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한 평 텐트서 두번째 여름… 정부가 우릴 버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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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19개월… 절망 그리고 분노

지난 11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2층 난간에는 난초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 열대어 어항과 나날의 일정이 빼곡한 달력도 눈에 띄었다. 대피소가 아니라 여느 가정집 모습이었다. 1년 7개월째 체육관에서 지내는 이재민 최경순(64)씨는 "요즘도 '쿵' 하는 발걸음에 '악' 하고 가슴이 요동친다"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최대한 집처럼 꾸며 대피소 생활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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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1평 넓이의 텐트 221개가 들어서 있다. 1년 7개월 전 포항을 강타한 지진에 집을 잃은 이재민 399명이 여기서 살았다. 지금도 208명이 등록돼 있다. 주민들은 마음의 안정을 위해 2층 난간 주변에 화초를 키운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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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지진 피해를 배상하라는 청구 소송이 오는 24일 시작한다. 지진 발생 587일 만이다. 소송은 시민 1200명이 국가와 포항지열발전소 건설을 주관한 넥스지오 등을 상대로 제기했다. 본지가 첫 재판을 계기로 현지를 취재한 결과, 지진의 충격파는 여전히 포항 곳곳의 삶을 흔들고 있었다.

◇포항 지진 1년 7개월… 여전한 후유증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이 포항을 덮쳤다. 대한민국 기상청 관측 사상 둘째로 강한 지진이었다. 포항 인구 10명 중 3명꼴인 15만8400여 명이 주택이 파손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시민 2390명이 이재민이 됐다. 19개월간 이어진 '지진 후유증' 여파로 시민 10명 중 4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인구 유출에 이어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부동산 가치가 급락했다. 이재민 2390명 중 2030(85%)명이 2년 계약 임대아파트 등 임시 주택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 360명은 피해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임대 아파트 입주권을 얻지 못해 체육관과 이주단지 내 컨테이너 숙소 등에 흩어져 산다. 이들은 "당국의 피해 추산은 엉터리"라며 "집이 무너져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 살란 말이냐"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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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체육관은 일상을 되찾기 위한 악전고투의 현장이었다. 지진 직후 체육관에 성인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1평 넓이의 텐트 221개가 설치됐다. 이곳에서 399명이 살았다. 지금도 208명이 체육관 이재민으로 등록돼 있다. 고령의 주민은 면역력이 약해져 작은 물집이 띠 모양으로 번지는 대상포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최우득(80)씨는 "지진 이후 어지럼과 대상포진이 괴롭혀 약으로 버틴다"며 "요즘 일교차가 심한데도 난방이 되지 않아 춥다"고 말했다. 남중호(72)·조현옥(68)씨 부부는 "지진 때 냉장고며 컴퓨터, 세탁기 등 값나가는 세간이 다 박살 났다"며 "교도소 같은 대피소에서 19개월 동안 지내는데 희망이 없다. 정부가 우리를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부부는 또 "여름을 두 번 나도록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며 "막막하다"고 했다.

포항은 동해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다. 그런데 지진으로 관광업이 얼어붙었다. 영일대해수욕장 핵심 상권은 지진 전에 비해 매출 30%가 줄었다고 한다. 15년째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숙박업을 하는 정모(64)씨는 "지진이 무섭다며 숙박을 꺼리는 정서가 매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그나마 숙박하는 사람도 1~2층의 저층을 원해 난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해산물 전문 식당에서 일하는 김모(62)씨는 "장사가 엉망"이라며 "황금 시간대 손님이 고작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량은 반 토막이 났다. 이복길 포항시 안전도시사업과장은 "지진이 뒤흔든 건물이라 불안하다는 사람이 많아 부동산 시장이 경색됐다"며 "포항시 전체 부동산 가격은 평균 20% 떨어졌다"고 말했다. 인구는 1년 7개월 만에 4834명이 줄었는데, 이는 지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1300여 명이 더 준 수치다.

◇"여름 두 번 지나도록 정부는 팔짱만"

'정부조사단, 지진과 지열발전 연관성 공식 인정, 정부는 포항 지진 특별법 제정하라.' 요즘 포항 시내 곳곳은 이런 플래카드로 뒤덮여 있다. 포항시는 지진 특별법 제정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4월 2일 '지진 피해 보상 및 재건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나선 것이다. 지난 3월 정부 조사단이 "(정부가 지원한) 포항 흥해읍 지열발전소가 11월 15일 포항 지진을 촉발했다"고 발표했다. 포항 지진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결론이었다. 포항시의 특별법 제정 건의에 이어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잇따라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피해 주민이 개별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배상을 받는 근거를 마련하는 게 골자다. 앞서 정부는 2003년 마련된 풍수해 재난 지원법을 기준으로 재난지원금을 책정했다. 집이 완전히 파손돼도 지원금은 900만원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재난 지원금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포항 지진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다. 지난 3일 1000여 명 상경 집회, 지난 4월 3만명 포항 시내 집회, 같은 달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 500여 명 집회, 청와대 국민 청원 등이다. 포항 시민사회단체 50여 개가 참여한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 대책위원회(범대위)'가 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특별법은 3개월 넘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임성남 범대위 대변인은 "국가 사업에 따른 인재라는 게 밝혀졌으나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었다"며 "여야 의원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포토]포항, 지진후 19개월 여전한 텐트생활…"최대한 집처럼 꾸며 견뎌"

[포항=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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