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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미국의 DARPA처럼 혁신기술 산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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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을 인터넷 등 혁신 기술을 탄생시킨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같은 기관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제 목표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대한상의회관에 있는 KEIT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정양호(58·사진) 원장은 "산업기술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KEIT는 한 해 1조5000억원의 정부 산업기술 연구개발 예산을 집행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이다. 인공지능(AI), 시스템 반도체, 미래차, 로봇, 바이오 등 주요 분야에서 국가 예산을 지원해 산업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

조선비즈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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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장이 롤모델로 언급한 DARPA는 인터넷, 자율주행차, 인간형 로봇 기술 개발의 산파 역할을 한 곳이다. 미 국방부 산하기관이지만, 방산(防産) 기술뿐 아니라 인류에 도움이 되는 첨단 기술 개발에도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2015년 DARPA가 주최한 재난 로봇 경진대회에선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가 개발한 '휴보'가 우승하기도 했다.

"미 DARPA처럼 혁신적 연구과제에 도전해야"

정 원장은 "DARPA 는 인류에게 꼭 필요하지만 민간 기업들이 엄두조차 못 내는 도전적 과제를 선정한 뒤 연구진에게 3년간 전권을 준다"며 "이젠 우리나라도 남들이 만든 기술을 빠르게 카피해서 따라잡는 추격자형 연구개발보다는 남들이 만들지 못한 독보적 기술을 만들어내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형 기술 개발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정부 예산 지원 연구개발(R&D) 과제 성공률은 90%에 이른다. 정 원장은 "10개 과제 중 9개나 성공한다는 건 목표치를 아주 낮게 세웠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점진적 기술 개발로는 혁신성장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정 원장은 기술혁신을 위해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개발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혁신적 R&D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전문가들과 토론하기 위해 대구 본사 대신 서울 사무소에 와 있다"며 "성공률만 따지는 연구개발 문화로는 세계를 주도할 혁신적 기술은 한국에서 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정 원장은 31년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잔뼈가 굵은 공무원 출신이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안동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28회로 공직에 들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 총무팀장·산업기술정책관·에너지자원실장, 조달청장을 역임했다. 공모 과정을 거쳐 지난 3월 27일 KEIT 원장에 취임했다.

"부처별 '칸막이식 연구개발' 벗어나야"

정 원장은 '부처별 칸막이식' R&D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공공 R&D 사업은 부처별로 지원 기관과 예산이 분리돼 있다 보니 기초연구 분야의 성과가 산업 분야로 이어지지 못한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개발 과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산업화로 연계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R&D 사업의 목표와 조직이 바뀌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정 원장은 "지난 30여 년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모든 정부가 '규제 철폐' '벤처 육성' '혁신적 R&D'를 내걸었지만 실패한 이유가 바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든 조직을 새로 만들어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이라며 "전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한 뒤 잘된 점은 이어받아야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정 원장은 칸막이 문화 타파를 위해 우선 산업부가 운영하는 '전략기획단'과 KEIT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현재 산업 분야 연구개발 사업은 산업부가 선임하는 전략기획단이 방향을 정한 뒤 KEIT가 예산을 나눠주고 연구개발 성과를 평가 관리하는 이원적 구조"라며 "다음 달에 전략기획단과의 통합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명칭도 산업기술기획평가원으로 바꿀 예정이다.

KEIT는 올해로 창립 10주년이 됐다. 정 원장은 "KEIT는 지난 10년간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소극적 역할을 해왔다"며 "앞으로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시대에 맞춰 기업, 대학, 연구소 등 외부 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리는 기획 능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최현묵 기자(sean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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