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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기고]수사권 조정안과 민주주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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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경우회 개혁본부장

서울경제


문무일 검찰총장은 연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형사사법 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돼야 하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형사사법 절차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게 운영되는가 묻고 싶다.

형사사법 절차의 기본 구조는 수사·기소·재판이다. 국민 입장에서 형사사법 절차의 각 단계마다 중립적·객관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어야 억울한 상황이 줄어든다. 해외의 많은 나라는 수사와 기소단계를 분리해 각자의 영역에서 운영하고 있다.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법률과 실무 모두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벽하게 분리했다. 경찰과 검찰이 각각 수사와 기소를 수행하며 상호견제하는 가운데 협력한다. 프랑스·독일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검사의 수사권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내에 자체 수사인력이 없거나 검사 작성조서에 증거능력이 없어 실질적으로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없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지휘권과 독점적 영장청구권, 기소권 등 형사사법 절차의 전반을 장악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부터 출발한 검사 지배적 수사구조는 그간 부정부패·권한남용 등 많은 폐단을 낳았다. 이 때문에 검찰권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고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도 계속됐다. 그럼에도 검찰은 지금까지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화두가 나올 때마다 조직 이기주의적인 주장을 내세우거나 다른 쟁점을 끌어들여 검찰개혁이라는 본질을 흐리게 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이번에도 검찰은 국민의 뜻을 헤아린다거나 독점적 수사권이 가져온 폐단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그동안 검찰에 막중한 권한을 위임한 주권자인 국민의 엄중한 경고다. 국민은 검찰이 과연 그러한 권한을 행사할 자격이 있는지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고 있고 검찰에 위임한 권한의 일부를 다시 회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국민의 뜻을 헤아린다거나 독점적 수사권이 가져온 폐단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로지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한의 일부가 축소되는 것에 대한 우려만 가득하다.

검찰은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검찰개혁이라는 본질을 흐리게 해 개혁 없이 넘어가려 한다면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검찰은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수사권에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패스트트랙 수사권 조정안이다. 바라건대 모두는 손가락만 보지 않고 달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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