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해양쓰레기로 바다거북 폐사… 경각심 일깨워야” [차 한잔 나누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연구원 / 2018년 바다거북, 제주서 자연방류 / 쓰레기 잔뜩 먹고 11일 만에 죽어 / 전국서 찾은 죽은 거북 부검 결과 / 대다수가 뱃속에 플라스틱 가득 / 심각성 알리고 보호방안 등 마련 / 인체 영향 여부 연구도 진행 예정

2017년 7월 충남 보령에서 국제적 멸종 위기종이자 해양보호생물인 ‘붉은바다거북’이 죽은 채 발견됐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연구원과 합동연구팀은 사인을 규명하고 장기 형태 등을 연구하기 위해 거북을 부검했다. 거북의 배를 갈랐더니 식도에서 항문까지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자루 모양 그물인 ‘정치망’에 걸려 호흡을 하지 못한 것이 직접적 사인이었다. 장기에서 나온 플라스틱 양도 엄청나 연구원들이 모두 경악했다고 한다.

김 연구원은 지난 21일 충남 서천의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처음 거북을 부검했을 때는 그 상황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플라스틱이 너무 많아서, 그만큼의 플라스틱이 거북의 뱃속에 들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세계일보

해양파충류 전문가인 김일훈 연구원이 지난 21일 충남 서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가진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해양 플라스틱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김 연구원과 연구팀은 이후 ‘한국 연안에서 발견되는 바다거북의 사인 규명 및 위협요인 연구’를 시작했다. 전국을 다니며 죽은 거북을 수거해 부검했다. 현재까지 모두 42마리를 부검했는데 연구를 끝낸 20마리 모두에게서 플라스틱이 나왔다. 나머지 22마리의 절반 이상에서도 플라스틱이 나왔다. 부검한 거북에서는 어김없이 장천공, 복막염, 장중첩·폐색 등 해양 쓰레기 유발 질환이 관찰됐다.

김 연구원은 “두 번째 거북을 부검했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북으로 보낸 ‘삐라’, 그러니까 비닐종이에 글자가 인쇄된 대북 선전물이 나왔는데 글귀가 하나도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면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먹고 버리는 페트병 포장지라든가 사탕 껍질, 중국어가 적힌 박스 포장지나 비닐 등이 거북 뱃속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북을 부검하면 장기 특정 부분이 부풀어 있거나 장막이 종이처럼 얇아져 있다. 해양 쓰레기 등이 장내에서 부패하면서 염증이 생기고 장막이 얇아진 것”이라며 “쓰레기가 특정부분을 막아 장막이 터지거나 폐어구 등이 그곳을 찔러 구멍이 나면 사망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해양 파충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김 연구원을 포함해 2명뿐이라고 그는 전했다.

김 연구원은 바다거북과 바다뱀, 바다악어, 바다이구아나 등을 주로 연구한다. 적도 부근에서 산란하고 먹이활동을 위해 우리 해양에 들르는 바다거북의 이동 경로와 생태 등을 연구하는 게 주업무다. 2017년부터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등에 따른 바다거북의 사인 연구라는 과제가 하나 늘었다.

지난해에는 인공증식으로 태어난 4년생 붉은바다거북을 자연 개체 수 회복과 이동경로 연구 등을 위해 인공위성 추적장치를 등갑에 달아 제주도에서 자연방류했다. 11일 만에 부산 바닷가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지난해 8월 제주에서 열린 자연방류 행사에 김영춘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이 직접 참여하는 등 관심이 컸는데 아쉬움을 남겼다.

사체로 돌아온 거북 ‘KOR0093’(93번) 뱃속에서도 라면스프 봉지와 비닐, 폐어구 등이 가득했다. 김 연구원은 “수족관에서 자란 93번이 해양 쓰레기에 노출될 일이 없었으니 11일간 우리 해역에서 해양플라스틱을 먹은 것”이라며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의 수명을 보통 100∼120년으로 추정하는데 11일 만에 사체로 돌아온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거북 사인 규명과 위협요인 연구의 목표는 궁극적으로는 거북 보호에 대한 정책 제언을 하는 것”이라며 “거북을 포함한 해양생물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 노출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는 효과와 해양 쓰레기를 회수할 수 있는 명분도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북 부검 연구는 해양 플라스틱이 우리 인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김 연구원은 “해양 플라스틱 문제가 상징성이 큰 거북과 고래 등에만 국한돼 있지만 사실상 플라스틱을 피할 수 있는 해양생물은 없을 것”이라며 “해양 쓰레기와 플라스틱이 구성하는 고분자 물질이 쪼개져 물고기 등의 근육에 축적되고, 먹이사슬을 통해 어떻게 전파가 되는지 후속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천=박영준 기자 yjp@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