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 장기성 의식하며 내부 기대치 낮춘 듯…대신 복귀 명분
김정은과 '세계 최강' 미 대통령 간 신뢰 부각하며 위상 제고
군사분계선 앞에 선 북미 정상 |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이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날 판문점 회동 내용을 예상보다 절제된 톤으로 보도해 눈길을 끈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공식 매체들은 이날 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을 공개하면서 회담 내용보다는 성사 배경과 상봉의 정치·외교적 의미를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북한 매체들은 두 정상의 회동을 '단독 환담과 회담'으로 표현하면서도 구체적 언급 없이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해나가며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 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재개하고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군사분계선 사이에 두고 악수하는 북미 정상 |
이어 북미 정상이 "조선반도의 긴장 상태를 완화하며 조미 두 나라 사이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끝장내고 극적으로 전환해나가기 위한 방도적인 문제들과 이를 해결함에 있어서 걸림돌로 되는 서로의 우려 사항과 관심사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전적인 이해와 공감을 표시했다"고 원론적 내용을 전했다.
두 정상이 취재진 앞에서의 환담 외에도 53분 동안 사실상 회담 성격의 회동을 했음에도 3문장으로만 소개하며 비교적 담담하게 전했다.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은 사상 첫 회담이어서 상세히 보도했다고 할 수 있지만, 하노이 2차 회담은 합의문 없이 결렬됐음에도 양국 정상의 발언을 비교적 길게 전했다.
이런 보도행태는 일단 이번 만남이 급작스레 이뤄진 '번개 회동'인데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주고받으며 회담 재개 외에 구체적인 합의를 이뤄낸 건 아니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추정된다.
판문점서 악수하는 북미 정상 |
북한은 지난 2월 김 위원장의 하노이 도착 이전부터 이례적으로 출발 사실을 공개하며 북한 주민들의 기대치를 높였다가 충격적인 실패로 끝나면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하노이 회담의 교훈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양국의 다양한 접촉과 회담 보도에서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 북한은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의에 따라' 성사된 과정을 소개하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각별한 친분·신뢰'를 부각했다.
판문점에서 만난 남북미 정상 |
더욱이 회동 발언에 비해 관련 사진은 35장이나 공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회에 김정은 위원장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김 위원장이 이를 수락했다며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6년 만에 조미 두 나라 최고수뇌분들께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역사적인 악수를 하는 놀라운 현실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또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안내해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 앞까지 와서 다시 한번 악수한 사실을 언급하며 "미국 현직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영토를 밟는 역사적인 순간이 기록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두손 맞잡은 남북 정상 |
남북미 정상이 동시에 사상 처음 만난 데 대해서도 '역사적인 장면'이라며 "전 세계를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게 했으며 오랜 세월 불신과 오해,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간직한 판문점에서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 중 북미 정상의 각별한 신뢰를 강조한 부분만 유일하게 소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훌륭한 친분관계가 있었기에 단 하루 만에 오늘과 같은 극적인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훌륭한 관계는 남들이 예상 못 하는 좋은 결과들을 계속 만들어낼 것이며 부닥치는 난관과 장애들을 극복하는 신비스러운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문점서 악수하는 북미 정상 |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과 동등한 자격으로 만날 뿐 아니라 각별한 친분과 신뢰를 갖고 있음을 부각함으로써 김 위원장의 정치적 위상과 리더십을 치켜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복귀할 명분도 밝힌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노딜 이후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를 까딱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며 올해 말까지 새 해법을 갖고 나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판문점 회동으로 상황이 반전되고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는 명분이 마련됐음을 주민들에게 알린 것으로 볼 수 있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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