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B급 감성’ 시정 홍보에 충주시보다 유명해진 공무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충주시 유튜브 ‘충TV’만든 김선태 주무관
한국일보

김선태 주무관이 5일 충주시청 홍보담당관실 서고에서 ‘충TV’에 올릴 영상을 녹화하고 있다. 충TV는 일반 행정직인 김 주무관이 기획 출연 촬영 편집을 혼자 도맡는 ‘1인 미디어’다. 그는 “별도의 촬영실과 장비, 인력은 없지만 네티즌이 원하는 유쾌한 콘텐트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정 홍보를 대놓고 하면 누가 봅니까.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데”

충북 충주시청 홍보팀 김선태(32ㆍ행정 8급) 주무관이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충TV’의 인기 비결을 묻자 되받아 친 말이다. 그는 “누리꾼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가볍고 유쾌하게 만든 것이 통한 것 같다”고 했다.

요즘 충TV는 공공기관 유튜브 가운데 가장 핫하다. 지난 4월 9일 개설된 채널의 구독자수가 8일 현재 3만 2,000여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선보인 영상 14편의 총 조회수는 183만회를 돌파했다. 구독자수에서 충TV는 개시 3개월 만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2위로 등극했다.

지자체 중 제일 잘나가는 서울시 유튜브의 구독자는 현재 5만 3,000여명. 하지만 서울시 유튜브의 개설 시점이 2012년 8월이고, 제공된 홍보 영상이 2,600개가 넘는 점을 감안할 때 1,2위의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 그 만큼 충TV의 기세가 무섭다는 얘기다.

이 충TV를 만든 이가 바로 김 주무관이다. 충주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담당자인 그는 유튜브 영상을 혼자 제작한다. 아이디어 기획부터 출연, 촬영, 편집까지 혼자 다 하는 ‘1인 미디어’인 셈이다. 지자체 유튜브는 대개 전문 기관에 용역을 주거나 SNS홍보전문가를 뽑아서 운영한다. 충주시처럼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도맡아 운영하는 건 아주 드문 경우다.
한국일보

최근 공공기관 공식 유튜브 중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충TV’. 인터넷 화면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충TV는 조길형 충주시장의 지시로 시작됐다. 조 시장은 4월초 김 주무관을 시장실로 따로 불러 “SNS대세인 유튜브 홍보를 즉시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순간 김 주무관은 적이나 당황했다고 한다. 인력과 예산, 장비 등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7월 홍보팀으로 발령난 뒤 상부에 유튜브 홍보의 필요성을 보고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건 전문 인력을 보강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인력 충원도 없이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죄다 혼자 관리하는 저한테 (유튜브까지)하라는 말씀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인사권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는 없는 법. 고민을 거듭하다가 약간의 불만을 섞어 ‘시장님이 시켜서 했어요’란 첫 작품을 만들었다. 약 4분 분량의 이 영상은 “너 유튜브해”라는 시장 명령에 “내가 이걸 어떻게 해.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볼멘소리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시켜서 억지로 시작했다”며 심드렁하게 첫 유튜브 영상을 준비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담았다.

한데 이게 대박을 쳤다. “은근히 재미있다”는 반응이 쏟아지며 33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자신감을 얻은 김 주무관은 일주일에 한 편 꼴로 콘텐트를 쏟아내고 있다. 소재는 공무원의 일상을 소개한 것부터 지역을 알리는 것까지 다양하다. 내용은 틀에 박힌 홍보물이 아니라 예상을 뒤엎는 역발상이 주를 이룬다. 친근한 수다와 몸짓, 통통 튀는 자막으로 편안한 웃음을 자아내는 식이다.

‘대신 자 드립니다. 본격낮잠 방송’편은 김 주무관이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청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 네티즌의 배꼽을 빼놓았다. 충주시육아종합지원센터 준공식을 앞두고는 어른들이 센터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영상을 올려 폭소를 자아냈다. 김 주무관이 스스로 사인회를 진행한 ‘홍보맨 팬사인회’, 충주의 자랑인 수소차를 홍보한 ‘관용차를 훔쳐라’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세무직 녹지직 등 직렬별 공무원의 솔직 토크도 눈길을 끈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별건 없는데 왜 이리 웃기냐” “이 유튜버 진짜 공무원 맞냐” “틀에 박힌 격식을 깼다. 관공서에 대한 편견도 깼다”는 등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일보

충주시페이스북은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포스터로 가득하다. 충주 옥수수를 홍보한 게시물. 충주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충주시 노인복지 시책을 홍보한 게시물


충TV가 인기를 끌면서 김 주무관은 더 바빠졌다. 전국에서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강연과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강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는 그는 “충TV가 뜨면서 가장 힘든 건 제 얼굴이 화면에 나온다는 점”이라며 “이러다 연예인처럼 사생활이 불편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이 업무를 하는 동안 유튜브 홍보에서 공공기관 전국 1등을 해보는 것이다. 나아가 충주라는 브랜드를 ‘재미있고 유쾌한 고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디딤돌을 놓겠다는 각오다.

김 주무관은 “친근한 ‘B급 감성’으로 웃음을 전하면서 시정도 자연스럽게 홍보하는 전략을 짜기 위해 늘 머리를 굴리고 다닌다”고 활짝 웃었다.

충주=글ㆍ사진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