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울 자율형사립고 학부모연합회 관계자들이 자사고 지정취소 반대 3만명 서명을 전달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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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강남 가라는 얘기네요.”
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평가 소식을 들은 백모(42·서울 노원구)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백씨는 올해 중3이 된 아들을 서울 강북에 있는 자사고인 신일고에 지원하게 할 예정이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면학 분위기가 좋고 교사들도 잘 가르친다고 들어서다. 하지만 이날 평가에서 신일고가 시교육청이 제시한 기준점수(70점)에 미달해 탈락하면서 백씨의 계획도 무너졌다.
백씨는 아이의 고입을 앞두고 혼란에 빠졌다. 신일고와 또 다른 자사고, 일반고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하지만 모두 다 썩 내키지 않아서다. 다른 자사고인 선덕고(도봉)에 보내자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신일고 등이 일반고로 전환되면 선덕고의 경쟁률이 높아져 아이가 지원해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선덕고도 내년 평가에서 기준점수를 넘지 못하면 일반고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근처 일반고만큼은 피하고 싶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자사고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대입 진학 실적이나 면학 분위기 등이 좋지 않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백씨는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해서 다니고 있는 자사고를 정부가 무슨 권리로 없애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강남으로 이사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당장 올해 입시라 난감하다”고 답답해했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울 자사고 학부모 연합회 관계자들이 자사고 재지정평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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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과 인천교육청을 마지막으로 교육당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가 일단락된 가운데 중3 자녀를 둔 학부모 중에는 백씨처럼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올해 평가 대상이었던 자사고 24곳 중 상산고(전북)·세화고(서울)·안산동산고(경기) 등 11곳이 일반고로 전환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 학교에 지원할 계획이었던 학부모들은 당장 올해 자녀를 어떤 고교에 보내야 할지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3 딸을 둔 김모(45·서울 영등포구)씨도 자녀 진학문제로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 중 하나다. 김씨는 당초 자녀를 상산고와 같은 전국단위 자사고에 보낼 계획으로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상산고가 올해 평가에서 탈락하면서 아이 진로 계획을 급격히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씨는 “민사고·하나고가 평가를 통과했어도 안심하고 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며 “정부가 갑자기 법을 바꿔서 자사고를 다 없앨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냐. 정권에 따라 고등학교가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를 밥 먹듯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이어 “올해가 절반 이상 지난 시점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건 비상식적이다. 적어도 아이가 중1 때는 고교 체제가 어떻게 될지 확정이 돼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시·도 교육청의 평가에서 탈락한 자사고들이 무더기로 행정소송을 앞둔 것도 문제다. 2020학년도 고입 세부계획이 9월에는 확정돼야 하는데, 학교와 정부 간의 소송전이 확산되면 계획수립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날 서울자율형사립고교장연합회는 자료를 통해 “신뢰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평가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평가기준 설정, 평가위원 선정 등 평가 전반에 대한 정보공개와 함께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상산고·안산동산고·해운대고(부산)도 소송을 예고한 상황이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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