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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부모 암 수술로 연차 낸 직원에 “안 돌아가셨잖아” 못 가게 한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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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갑질 119’ 직장 내 괴롭힘 사례 공개

· “사장 갑질은 노동청에 신고하세요”




서울 노원구에 있는 커퍼머신 수입업체에서 일을 했던 ㄱ씨는 입사 초기부터 사장으로부터 잦은 욕설을 들었다. 사장은 일을 가르칠 때마다 폭언을 퍼부었다.

올해에도 폭언은 줄어들지 않았다. ㄱ씨가 한 가게에서 수리를 시도했지만 커퍼머신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새 부품이라도 두고 가라는 가게 사장과 실랑이를 벌이던 ㄱ씨는 자신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것은 욕설이었다.

“x발놈. 해도 너무한다. x놈의 새끼야. 띨띨해도 엥간히 띨띨해야지 새끼야. 챙겨갖고 와야 할 것 아냐. 철수했으면 다 정리하고 원상복구해서 와야 할 것 아냐. 왜 나한테 전화해. 니가 똥 쌌으면 치우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경향신문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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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욕을 하루도 듣지 않은 날이 없었고 새로 온 직원들은 2~3주 만에 퇴사했다. 사장은 부모 암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차를 쓰려는 한 직원에게 “부모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쉴 필요 없다”고까지 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달 퇴사한 ㄱ씨는 노동청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별 일이 아닌데 좋게 좋게 하라”고 답했다.

ㄱ씨는 “부모가 안 돌아가셨으면 휴가를 가지 말라 하면서 욕이란 욕은 다하고 노동청에서도 그냥 무시하라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ㄴ씨는 원장이 장애인들에게 원장 개인 소유의 밭일을 하게 하고, 개인적인 잡일과 심부름을 시켰다고 했다. 무려 10년 넘게 장애인과 사회복지사들을 착취했다는 것이다. 시간외 근무를 허위로 작성하고, 4대 보험비를 조작해 횡령까지 했다는 게 ㄴ씨 설명이다.

150명의 노동전문가·노무사·변호사들이 오픈카톡방 등을 통해 무료 노동상담을 해주는 단체인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첫날인 16일 이 같은 사례들을 공개했다.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르면 대표이사에게 신고를 해야 한다”며 “원장과 부원장은 부부, 사무국장은 아들, 사무원은 며느리, 총무는 원장 조카로 구성돼 있는 시설에서 ㄴ씨는 괴롭힘을 원장에게 신고하고 해결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표이사, 사장의 갑질은 회사가 아니라 노동청에 신고해야 한다. 직장갑질 119에 들어오는, 신원이 확인되는 이메일 제보자 3명 중 1명의 사연은 대표이사의 갑질”이라며 “대기업, 공공기관의 경우 상사의 갑질이 많지만 중소기업과 소기업으로 가면 사장 갑질이 많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 119는 이날부터 다음달 15일까지 한 달을 ‘대표이사 갑질 집중 신고기간’으로 정해 사장 갑질을 제보받은 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위반되는 제보를 정부에 신고(근로감독 청원)할 계획이다. 아래는 직장갑질 119가 정리한 직장 내 괴롭힘 대처 10계명과 FAQ(자주 묻는 질문과 대답)다.

경향신문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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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질타파 10계명(직장 내 괴롭힘 대처 10계명)

①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괴롭힘을 당하고 계세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②가까운 사람과 상의한다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SNS로 알리고 상의하세요.

③병원 진료나 상담을 받는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병원 진료나 상담을 받습니다. 괴롭힘과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때 필요합니다.

④갑질 내용과 시간을 기록한다

갑질 내용과 시간, 자리에 있었던 동료, 특이사항 등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⑤녹음, 동료 증언 등 증거를 남긴다

본인이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건 불법이 아닙니다. 녹음, 동료 증언, 문자, 이메일, SNS 등 증거를 모읍니다.

⑥직장괴롭힘이 취업규칙에 있는지 확인한다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취업규칙에 괴롭힘이 명시되어 있는지와 신고기관, 예방조치 등을 확인합니다.

⑦회사나 노동청에 신고한다

괴롭힘 사실을 회사에 신고합니다. 공무원, 공공기관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습니다. 괴롭힘 신고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거나 대표이사의 괴롭힘은 노동청에 신고(진정, 고소)하면 됩니다.

⑧유급휴가, 근무장소 변경을 요구한다

가해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할 수 없다면 근무장소 변경과 유급휴가를 요구합니다.

⑨보복갑질에 대비한다

괴롭힘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⑩노조 등 집단적인 대응방안을 찾는다

노동조합, 노사협의회, 직장갑질119 온라인모임 등 집단적인 대응방안을 찾습니다.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 대표적 오해 FAQ

Q.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1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건가요?

A. 아닙니다. 5인 이상 사업장은 모두 적용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이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경우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의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됩니다. 단, 근로기준법 제93조(취업규칙의 작성·신고)는 “상시 1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작성하여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어, 직장 내 괴롭힘 내용을 담아 취업규칙을 개정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Q. 직장 내 괴롭힘은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 없나요?

A. 신고할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는 우선 사용자에게 신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제76조의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①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따라서 직장 상사의 괴롭힘과 갑질은 일단 사용자 또는 취업규칙에 명시된 기구에 신고하는 게 좋습니다. 만약 회사가 신고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피해자 또는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줬다면 고용노동부에 신고(진정 또는 고소)하면 됩니다. 괴롭힘 행위자가 대표이사일 경우 이사회 등 취업규칙에 명시된 기구에 신고하고, 동시에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됩니다.

Q. 직장 내 괴롭힘은 실명으로만 신고할 수 있나요?

A. 익명 신고도 가능합니다. 개정 근로기준법에는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고 명시해 피해자, 피해자 동료, 피해자 지인 등 누구든지 신고할 수 있고, 실명 신고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서 익명으로 신고가 가능합니다. 사업주의 괴롭힘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에 진정하거나 근로감독 청원을 할 때 익명으로 해도 됩니다.

Q.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비정규직은 적용 대상이 아닌가요?

A. 비정규직도 포함됩니다.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는 물론 사용사업주의 지휘 하에 있는 파견노동자도 법 적용 대상입니다. 고용노동부도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 모범 규정에서 “(적용범위) 이 규정은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 및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서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는 자(이하 “직원”이라 한다)에 대하여 적용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Q.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가 회사가 괴롭힘이 없었다고 결정했을 경우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을까요?

A. 우려는 있습니다. 그러나 허위사실이 아니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의심할 사유가 있었다면 무고죄나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증거 수집을 잘 해두는 것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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