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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예영준의 직격인터뷰] 한국 고맙다 울던 무토 日대사, 8년만에 '반한' 돌아선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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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관계 흔든 한국 정부에 실망

친한파 인사들도 돌아설 지경

역사 인식만 강조하지 말고

일본의 한국 경제 기여 알아줘야



도쿄에서 만난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

중앙일보

외교평론가로 활동 중인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대사와의 인터뷰는 15일 오후 도쿄 오다큐센추리 호텔에서 이뤄졌다. 아래는 2017년 저서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의 표지. ’한국의 치열한 경쟁 사회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란 의미로 쓴 문장인데 책 전체의 제목이 돼 오해를 샀다“고 그는 밝혔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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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재난을 당한 일본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해준 한국인의 온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1년 3월 일본인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한국 TV에 출연해 한국 국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일본인이 있었다.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 대사였다. 그는 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십시일반으로 모아 보낸 의연금 등 지원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한국 주요 언론사들을 돌았다. 한·일 양국 국민은 잠시나마 과거사 갈등을 뒤로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 본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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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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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8년여가 지난 요즘 무토 전 대사는 일본 TV 시사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가 됐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8년 전의 감격에 찬 발언과는 달리 한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 발언이 나온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영락없는 ‘반한(反韓) 인사’ ‘혐한(嫌韓) 인사’의 모습이다.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무토 대사를 인터뷰한 것은 일본인의 ‘혼네(속마음)’를 듣기에 적합한 인물이란 판단에서였다. 한국 근무 12년을 포함, 외교관 생활 40년을 대부분 한국 관련 업무로 보낸 대표적 지한파인 그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최초의 일본 대사였다. 그런 경력의 소유자가 갖는 한국에 대한 의견이나 감정을 통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일본인의 ‘혼네’를 들여다보았다.

Q : 양국 간에 역사 문제나 독도 문제 등 갈등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수습을 하고 경제 협력이 착실히 이뤄져 왔다. 지금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A : “지금은 사정이 다른 것 같다. 그동안 쌓아 올린 신뢰를 근본에서 깎아내린 문재인 정권의 행동에 실망이 너무 크다. 어디를 가도 한국을 좋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예전에는 정부 간 관계가 험악해지면 정치인들이 중간에 서서 풀었지만 지금 일본 국회에는 그러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일본인은 비교적 마음속 불만을 잘 드러내지 않고 참는 습성이 있는데 대신 한번 터지면 폭발한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사실상의 번복이나 징용공 문제에 대한 실망이 계속 중첩되어 왔다. 지금까지 일·한 관계를 위해 노력해서 쌓아 올린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Q : 징용공 문제는 문 대통령이 일으킨 것이라기보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온 것 아닌가.

A : “여태까지 한국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징용공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했다. (※한국 정부는 1974년과 2007년 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는 보상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판결이 나온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미 맺어진 조약·협정의 취지에 반해) 국제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는 판결은 다른 나라들에선 보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이라면 이런 판결이 안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 사법 당국의 판단이라고는 하지만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징용공 판결 연기를 둘러싼 사법 거래 의혹 등을 이유로) 전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그렇다면, 대법원장을 바꾼 사람은 누구냐. 전임 대법원장은 구속되지 않았나. 그런 일들이 있는데 문 대통령의 의사에 반하는 판결이 내려지겠나. 문 대통령은 원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제기한 변호인단의 일원이었다.”

Q : 그럼 징용공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A : “내 말이 차갑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이 국내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 한국이 제기한 ‘1+1’ 안대로 일본 기업이 돈을 내는 자체가 이미 확립된 일·한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Q : 그 사이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가 추가로 돈을 낸 전례가 있지 않나.

A : "위안부는 정말로 고통스런 생활을 했다. 가족들에게도 배척받고 결혼도 못 했다. 그런데 1965년 당시의 교섭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그 뒤 일본 사회당 의원이 위안부를 찾아내 문제를 제기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에 대해 법적인 해결은 끝났지만, 일본 정부도 위안부들의 고통과 괴로운 심정을 감안하고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고 (93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사과한) ‘고노 담화’가 나온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자발적 조치였다. 내가 서울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이 문제를 담당했는데 처음에는 한국 외무부도 ‘미흡하지만 최선을 다한 것’이라며 좋게 평가했다. 하지만 피해자 단체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박근혜 정부까지 오게 됐다. 그래서 다시 협상하고 양국이 서로 양보한 결과가 2015년 합의였다. 일본으로선 할 수 있는 만큼 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합의를 사실상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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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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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한국 경제가 일본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타격을 입히려는 의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A : “그렇지 않다. 한국 경제가 흔들리면 일본에도 피해가 온다. 정말 그런 보복을 할 작정이면 수출 금지조치를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이 원하는 것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파트너로서 신뢰 가능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Q :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아베 총리가 G20에서 만나주지도 않았다.

A : “한국 국민이 이번 조치에 화가 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본다. 그때 만나서 규제 조치를 통보했더라면 한국 국민이 갑자기 당했다는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서로 각자 국익에 바탕한 주장을 하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만난들 그게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Q : 징용공이든 위안부든 결국은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가 바탕에 있는 것 아닌가.

A : "역사인식의 문제에서 일본은 과거사를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한국 분들이 말하는 그대로다. 하지만 한국인들도 일본의 노력에 대해 좀 더 인식해 주기 바란다. 1975년에 처음 한국 대사관에 부임했는데 그때만 해도 일본 정부는 매년 각료 회의를 열어 한국에 여러 가지 경제협력, 기술협력을 무상으로 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경협은 한국 신문에 나오는데 일본의 경협만은 보도가 되지 않았다. 이런 사례도 있다.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국제통화기금(IMF) 등 여러 곳을 찾아가 자금 조달 노력을 했지만 잘 안됐다. 그런데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당시 신일본 제철 회장이 한국이 원하는 것은 최대한 도와주라고 했다. 당시 일본인 중에는 한국 병합에 대해 일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협력한 사례가 많다. 일본의 노력도 조금은 이해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이 아무런 반성도 없고 사죄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그 방법에 있어 미흡했을지 모르나 일본이 사죄를 안 한 건 아니다.”

Q :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를 도왔다는 생각은 한국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A : "내 말은 전후(戰後) 협력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인 가운데 식민지 때 일본이 학교 교육 등 한국에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한국을 위해서 한 게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삼고 일본에 공헌하기 위해 한 일이다. 하지만 전후 협력은 한국이 발전해 서로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다.”

Q : 당신은 혐한파로 생각하나, 친한파로 생각하나.

A : "한국분들은 지금의 나를 혐한으로 볼지 모르지만 나는 애증(愛憎) 모두 갖고 있다. 지난 40년간 외교관으로 일하며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나라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점, 그리고 일·한 관계 업무를 통해 조금이나마 관여해 온 점을 보람 있고 행복한 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점점 피로감이 몰려온다. 애정이 식은 부부관계라고나 할까. 최근의 일·한 관계는 나로서도 유감천만이다.”

Q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A : "국민감정이 아니라 국제 감각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프랑스와 독일이 과거사로 인한 골을 메울 수 있었던 것은 서로 객관적 사실을 존중하고 국민감정을 양국 관계에 개입시키지 말자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웃 나라가 사이좋게 지내는 게 어렵다고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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