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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곤충ㆍ버섯이 자라는 TV정원… 백남준이 꿈꿨던 ‘생태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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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백남준아트센터 ‘생태감각’ 전시 중 이소요의 ‘TV정원: 주석’. 센터 1층에 설치된 백남준 작품 ‘TV 정원’ 속 식물을 채취해 재해석한 작품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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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TV정원’. 이소요 작가의 ‘TV정원: 주석’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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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풀, 물, 달, 물고기…. 미디어아트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이 여러 차례 사용한 작품의 소재들이다. 비디오와 미디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 온 첨단의 그를 떠올린다면 조금 의아스러울 수도 있지만, 백남준은 평생 지구와 자연, 생태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았다. 45년 전인 1974년에 천명한 백남준의 말에서 자연에 대한 그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생태학은 경건한 세계에 대한 관념이다. 그것은 세계의 기획, 전 지구적 순환, 인간 행동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백남준의 이러한 철학을 기려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센터)가 지구 생태계를 위한 기획전 ‘생태감각’을 연다. 박민하, 박선민, 조은지 등 10명의 작가(팀)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간의 권한에 의문을 제기하고 공생을 위한 새 감각을 제안하는 전시다. 디지털 벽화와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실험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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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생태감각' 전시 중 조은지의 '문어의 노래'.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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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자연이 주제인 전시답게 동ㆍ식물의 원형에 대한 탐구가 돋보인다. 백남준의 대표작이자 센터 1층에 상설 전시돼 있는 ‘TV 정원’(1974)을 하나의 생태현장으로 규정하고 이를 재해석한 이소요 작가의 ‘TV 정원: 주석’이 대표적이다. ‘TV 정원’은 나무, 풀과 현대적 영상을 지속적으로 비춰대는 TV브라운관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센터에 설치된 지 10여년이 흘렀으니 세균, 곰팡이, 버섯, 곤충 등이 자라고 있다. 이소요는 이 작품 속 생물들을 채취해 보존용액에 담가 놓는가 하면, 현미경을 설치해 생물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마치 한 생물학자의 연구실에 발을 들인 듯한 느낌이다.

반대로 지극히 현대적인 오브제를 자연의 요소로 읽어낸 이들도 있다. 작가 제닌 기는 컴퓨터 등 미디어가 자연에서 비롯됐다고 가정한 ‘선구체’ 연작을 내놨다. 흙과 철가루, 전자석이 널려있는 바닥에 TV모니터, 스피커가 마치 채굴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체처럼 설치된 작품이다. 자성물질이나 철 같은 지구의 요소들이 환경, 인류와 호흡하면서 미디어를 탄생시켰다는 해석이다. 제닌 기 작가는 “자연과 인간도 교류하지만, 인간과 기술 사이에도 생태학적 관계가 있을 거란 호기심에 시작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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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생태감각’ 전시 중 백남준의 작품 ‘사과나무’.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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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체 어우러지기 힘들어 보이는 TV브라운관과 생명체를 접목한 백남준의 실험도 볼 수 있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며 전시관 초입에 설치된 ‘사과나무’(1995)는 33개 TV브라운관이 나무 형상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모니터 속 영상 속에는 물고기, 새, 누드모델 등의 모습이 생명력을 뿜어내듯 빠르게 오간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어항에 TV모니터 24대를 설치한 ‘TV 물고기’(1975), ‘TV 정원’은 이번 전시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센터 내에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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