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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우리 모두 선량한데 차별은 왜 생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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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 첫 단독저서

은밀하고 일상적인 차별과 혐오 포착

불평등 유지하는 구조부터 대응까지

“차별금지·평등 원칙 만들고 지켜야”



한겨레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창비·1만5000원

“왜 나 같은 ‘선량한 시민’을 차별주의자로 모는 거죠?”

난민 문제나 성소수자 이슈 등을 얘기할 때, 모욕적인 언사나 혐오 표현을 하는 이들이 내뱉는 흔한 반응이라고 한다. ‘선량한 시민’은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을 가리킬진대,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버스 승차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 ‘탑승 투쟁’이 되는 것처럼 “나에게는 불편함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 장벽이 되는 그때” 나의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관건은 그 다음이다. 싸움을 지지할 것인가, 피해 입었다며 투덜거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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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혐오주의나 차별주의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대신 은밀하고 사소한 일상의 정치성,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가담하고 공모하는 평범함의 위험성을 밝힌다. ‘나, 너,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자각하는 건,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억압에 기여한 태도를 책임지며 차별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이 책은 그리하여 차별 당했다는 사람은 많은데 차별한 사람은 없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인권 현장 보고서이면서 고발이다. 헌법에 명시된 평등과 차별금지 원칙을 아무도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온 주류 ‘진보’ 정치인, 지식인들조차 특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지난 17일 제헌절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지은이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는 이 책이 그가 무심코 던진 어떤 말에서 비롯했다고 말했다.

“3년 전, 혐오표현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제가 우리 사회의 ‘결정장애’라는 말을 했는데, 나중에 참석자 중 한분이 ‘왜 그런 말을 썼어요?’ 하고 물으시더군요. 저는 인권을 공부했고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차별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연구를 하기로 했죠.”

젠더나 난민 이슈에 대한 토론은 평행선이 되곤 한다. 누가 더 힘들고 어려운 처지냐는 논쟁이 자주 붙기 때문이다. 누가 더 힘들다고 할 수 없지만, 모두가 똑같이 힘들다고 할 수도 없다.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기회와 권리가 다르게 분배되기 때문에 각자 다르게 힘든 것이다. ‘너와 나를 다르게 힘들게 만드는 이 불평등을 함께 이야기하자’며 말 걸기 시작할 때 차별과 평등은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책을 쓴 동기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사람들에겐 평등 사회를 바라는 공통된 열망이 있다고 봅니다. 북유럽 국가에 대한 끝없는 동경에서 보듯,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이 각자 있잖아요? 모두의 문제로서 함께 모여서 얘기하고, 적대 밑에 숨은 공통분모와 정의로움에 대해 얘기해야 합니다.”

아동청소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관련 빈곤과 차별 연구를 오래 해온 김 교수는 흔치 않은 이력을 가졌다. 사회복지학 석사를 마치고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아동청소년 상담을 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부모도 없이 10~15년을 떠도는 아동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사회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는 그는 기존 복지 제도로 문제를 풀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임용돼 1년 반을 일하다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법 공부를 하러 떠난 이유였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나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으로도 3년간 일했고 2014년 <헌법의 약속>을 번역했다. “지은이 에드윈 캐머런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고법원(헌재) 재판관으로 성소수자이자 에이치아이브이(HIV) 감염인인데, 그런 재판관의 존재 자체가 법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고 그는 말했다.

“법학 논문 읽는 것이 재미있어요. 생각하고 논리를 펴면서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이어서 배우고 탐구하는 느낌이 좋습니다. 법 공부도 정의롭지 못한 법·제도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통해 바꾸는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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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존 스튜어트 밀, 마사 누스바움, 아이리스 영 등 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며 인권, 차별에 대한 이론을 개념부터 차근차근 읽는 재미가 크다. 먼저, 앞부분에선 일상의 특권과 잘 보이지 않는 구조적 차별(systemic discrimination)로 어떻게 불평등이 유지되는지 살피고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과정도 분석한다. ‘우리’가 아닌 ‘그들’의 범주를 나누어 과잉 일반화된 편견과 공포를 덧씌우고 내재화하면 특정 집단을 낙인 찍는 고정관념이 강화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여자치고 잘 하네”처럼 특권이나 차별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심코 던지는 비하 발언, 피해자가 조심했어야 한다는 추궁, 너무 예민하다는 비난, 소수자나 외국인을 희화화하는 유머나 혐오표현에 웃는 행위 모두가 ‘선량한’ 사람들의 차별적인 태도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 이유가 된다.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서 방어하기보다는 ‘더 알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기를 권합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비정규직 차별을 정당한 능력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신분화하는 근거가 될까요? 자신이 선량하다 생각할지라도, 어떤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차별에 가담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책의 핵심은 마지막 3부에 있다.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대원칙 아래 모든 이를 법과 제도에 ‘포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부분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에 의견서를 제출해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교과서에서 사라지도록 했다.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다”고 못박았던 것이다. 하지만 법이 정당한지 여부를 심판하는 헌법재판소 또한 이주노동자에 관한 사건 결정문에서는 불평등을 비가시화, 정당화한 사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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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싸우며 법을 바꾸는 변화가 두렵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평등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수많은 법을 바로잡고 만들어왔듯이 평등과 차별금지 문제도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구를 비난할지 아는 것이 정의란 말이 있어요. 각자 위치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연대해서 변화를 만들고,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동력까지 끌어냈으면 합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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