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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부활에 성공한 CEO 재기 노하우-오뚝이 CEO들을 일으켜 세운 힘 기술력·시장분석·진정성·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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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재기에 성공한 CEO가 있다. 이른바 ‘오뚝이 CEO’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다면, 우리는 그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창업진흥원, 재도전종합지원센터, 경영 컨설턴트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재기 모범 사례 ‘오뚝이 기업’을 추천받았다. 재기 성공 스토리로부터 경영 시사점을 뽑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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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믿고 버텨라

▷월등한 기술력은 든든한 발판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언제 어떻게 사업에서 발을 뺄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CEO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다. 전망이 어둡다는 확신이 들면 빨리 정리하고 다음 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더라도 좀 더 버텨보는 끈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특히 남들보다 월등히 우월한 기술이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더 그렇다. 굴곡이 있었지만 끝내는 기술의 힘으로 재기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한국 벤처 1세대로 통하는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이 대표적이다. 1993년 첫 창업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 실력으로 모두 극복해낸 경우다. 특히 거래업체에 갚을 돈이 떨어졌을 때 직원 12명을 이끌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1년간 기술 컨설팅을 해준 돈으로 빚을 갚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남 회장은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믿고 끝까지 버텼다. 2000년대 초 ‘IT 버블’ 당시에도 기술력을 믿고 버텼더니 오히려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위기는 극복하면 성장의 기회가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혁신적 실패사례 공모전’ 대상 수상에 빛나는 이희장 씰링크 대표는 기술 하나만 믿고 30년 동안 사업을 이어왔다. 이 대표는 30년 전 선박 관련 부품회사로 첫 창업에 도전했지만 내부 단속에 실패하며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한 직원이 회삿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면서 회사 자금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것. 한동안은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살았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무윤활 방식 회전축 밀폐장치’를 개발해내며 부활에 성공한다.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설비에 쓰이는 주요 제품인데, 기존 방식에 비해 폭발 우려가 적고 가격 경쟁력이 월등히 뛰어난 장비다. 삼성전자와 미국 인텔의 반도체 양산라인에 제품을 공급할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27년간 특수기계 분야에서 쌓은 경력과 기술력을 활용한 덕분”이라는 것이 이 대표 설명이다.

2001년 창업한 김태곤 파이온텍 대표 역시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 재기에 성공했다. 생활비가 부족해 2년여 동안 가족은 친척 집으로, 본인은 찜질방을 전전하며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대학원 때부터 연구해온 ‘나노화 기초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버텼고, 결국 반도체·공기청정기가 아닌 화장품 사업에서 기술을 활용해 빛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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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스스로 만들고 싶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제품에 힘입어 재기에 성공한 기업도 많다. 사진은 일본 가전기업 발뮤다를 세상에 알린 선풍기 ‘그린팬’(아래)과 네오펙트 뇌졸중 재활훈련 기기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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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시장에 있다

▷실패 경험 토대로 시장 분석 매진

꼼꼼한 시장분석을 토대로 재기에 성공한 CEO도 여럿이다. 이들은 “고객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문제를 풀자 사업이 저절로 살아났다”고 입을 모은다.

누적 거래액 2000억원, 월 거래액은 140억원.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한 인테리어 비교 견적 플랫폼 ‘집닥’이 거둔 성과다. 박성민 집닥 대표는 최근 스타트업계에서 가장 핫한 CEO 중 한 명이다. 창업 4년 만에 업계 1위를 거머쥐었고 누적 투자액도 2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그 역시 하루아침에 성공을 이뤄낸 것은 아니다. 19살 졸업 이후부터 이른바 ‘노가다’판을 전전하는 등 건설회사, 시행사 등을 거치며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도중에 이커머스, 시스템 통합업체 등을 창업했지만 사업이 망하면서 100억원 빚을 지기도 했다.

집닥의 성공 배경에는 탁월한 업계 이해도가 있었다. 워낙 오랜 기간 건설·인테리어 업계에 몸담다 보니 시장이 보였다. 고객 관점에서 불편한 점을 개선해주는 서비스가 호평받으며 사업이 커졌다. 평균 10년 이상 경력자가 현장을 관리하는 ‘안심집닥맨’, 공사를 진행하며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AS로 해결해주는 ‘안심품질재시공’ 등이다. 박 대표는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사업이 아니라 고객이 불편해하는 것을 해결해주는 사업을 만들자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주훈 삼분의일 대표는 2014년 가사도우미 플랫폼을 운영하다 사업을 접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매트리스 마케팅 프로젝트를 의뢰받으면서 사업이 180도 달라졌다. 매트리스 시장에 관심이 생긴 그는 지난 사업 실패를 교훈 삼아 시장분석에 총력을 기울였다. 매트리스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1년 넘는 기간 동안 1000번이 넘는 고객 검증 과정을 거쳐 ‘폴리우레탄 압축 폼 매트리스’ 개발에 성공했다. 2017년 선보인 해당 제품은 현재 네이버 쇼핑 플랫폼에서 기성 매트리스 판매량을 앞지르며 승승장구 중이다.

바다낚시를 즐기고 싶은 사람과 낚싯배를 연결하는 O2O 플랫폼 ‘마도로스’를 창업한 조맹섭 대표는 ‘데이터’에 주목했다. 조 대표는 예전부터 종사했던 여행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거듭된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우연한 기회로 낚시 데이터를 접하고 낚시 시장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2014년 200만명이었던 배낚시 인구가 3년 만에 400만명까지 성장한 것을 보고, 낚시 시장 데이터 수집에 나섰다. 현재는 직영선박 17척, 제휴선박 300척을 보유한 신개념 O2O 스타트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누적 투자도 83억원이나 된다. 조 대표는 “낚시 관련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수년 전 펜션 시장이 급성장하기 직전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전국에 배낚시가 가능한 배가 4600척이었는데 그 10%만 잡아도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데이터에 기반한 사업이라 자신감도 더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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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코리아는 주요 타깃층을 1020세대로 바꾸고 기존 올드한 브랜드 이미지를 ‘뉴트로’로 풀어냈다. 사진은 휠라 어글리슈즈 ‘디스럽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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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를 해라

▷스스로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업을

진심은 통하기 마련인가 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고집 있게 밀고 나가 결국 재기에 성공한 CEO들 얘기를 들어보면 체감할 수 있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토스트기로 유명한 일본 가전 기업 ‘발뮤다’의 재기 스토리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창업주인 테라오 겐 사장은 2003년 발뮤다를 창업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다. 심지어 2009년 1월에는 주문이 한 건도 없었을 정도. 기업 도산을 앞두고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테라오 겐 사장은 ‘이럴 때일수록 내가 제일 믿고 잘할 수 있는 데 집중했다’고 고백한다. 시장 눈치를 보지 말고 본인이 가장 만들고 싶은 제품 개발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지금의 발뮤다를 있게 만든 선풍기인 ‘그린팬’을 개발·판매하게 된 배경이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가격(약 50만원)도 시장 눈치 안 보고 높게 책정했다.

테라오 겐 사장은 과거 매경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시장을 주시하지만 시장조사는 하지 않는다. 세상의 불편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직원들과 나누다 보면 일주일이면 신제품 계획이 마련된다”며 “어차피 미래를 알 수 없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저서인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라는 책에서는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절대 속여서는 안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밀어붙이고, 그것을 끝까지 표현할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뇌졸중 재활치료기기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개발한 반호영 네오펙트 대표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두고 ‘운명’이라고까지 얘기한다. 과거 뇌졸중으로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떠나보낸 그는 뇌졸중 후유증 심각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 IPTV 사업, 모바일 게임, 시스템 용역회사 등 여러 사업이 거듭 실패하자 ‘그동안 진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사업을 하자’고 다짐했단다. 그가 개발한 재활기기는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에서 2년 연속 혁신상을 받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마치 게임처럼 재활훈련을 진행할 수 있어 ‘재활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깼다는 평이다. 지난해에는 기술특례제도로 코스닥 상장에도 성공했다.

‘라디오 유튜브’라고 불리는 ‘스푼라디오’를 만든 최혁재 마이쿤 대표 역시 당시 본인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를 사업화해서 대박을 낸 케이스다. 2013년 휴대폰 배터리를 공유하는 서비스 ‘만땅’을 창업했지만 삼성전자 등이 ‘일체형 휴대폰’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사업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2016년 팀원들과 창업에 대한 어려움과 고민을 토로하던 중,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할 곳이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 오디오 방송’이라는 아이템을 떠올렸다. 스푼라디오는 1020세대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끌어모으며 현재는 앱 다운로드 500만건을 넘기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

▶역발상 브랜딩으로 실적 껑충

▷마케팅 바꾸고 타깃층 변화 시도

“혁신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성공한 글로벌 CEO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격언이다. 브랜드 이미지에 변화를 줬을 뿐인데 재기에 성공한 사례도 많다. 기존 제품이나 사업에 크게 손대지 않고도 말이다.

재계에서 ‘동대문 신화’로 통하는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은 고졸 출신 맨손으로 사업을 일궈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부침이 있었다. 지인들이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 1993년 40세에는 무일푼으로 전락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브랜딩의 힘이었다. 1996년 그가 국내에 선보인 ‘크로커다일 레이디’는 거의 모든 패션업체들이 첫 점포를 서울 중심 상권에 내던 것과 달리 경기도 시흥 외곽에 1호점을 냈다. 반면 광고 모델로는 배우 오연수·송윤아 씨 등 당대 최고 스타를 기용했다. ‘저렴하지만 스타일만큼은 백화점 브랜드에 안 떨어진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매장 직원들로 하여금 고객들에게 옷을 맵시 있게 입는 법을 알려주도록 한 것도 주효했다. 백화점에서나 접하던 ‘코디 서비스’를 받은 중년 여성들은 크로커다일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휠라코리아가 훨훨 나는 배경에도 영업 전략 변경이 자리한다. 휠라코리아는 2000년대 나이키·아디다스 등에 밀려 파산위기까지 몰렸었다. 하지만 2016년 대대적인 브랜드 개편이 결정적이었다. 판매하는 제품은 크게 바꾸지도 않았다. 다만 주 타깃 고객을 기존 3040 중심에서 1020으로 바꿨다.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레트로 신발에 10~20대가 열광했고 실적은 급격히 뛰어올랐다. 2016년 118억원에 머물렀던 영업이익은 2년 뒤인 지난해 3571억원으로 30배 이상 성장했다.

인터뷰 | 4전 5기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똑같이 놀라고 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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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93년 창업 후 연결 기준 매출액 7000억원대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사이 1997년 IMF 외환위기, 2001년 IT 버블붕괴, 2004년 사업 지속성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4번 위기를 맞았던데.

A IMF 외환위기 때 거의 회사가 망할 뻔한 것을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외화벌이를 하면서 기사회생시켰다. 이후에도 약 4년에 한 번꼴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실패한 사람은 실패를 반복하고, 성공한 사람은 성공을 키워간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실패한 이유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스스로 변신하지 않는 한 실패한 사람이 성공으로 변신한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

Q. 그래서 어떻게 생각을 바꿨나.

A 돌이켜보면 너무 아마추어처럼 사안마다 일희일비했던 것 같다. 도덕경 공부를 하면서 수양이 많이 됐다. 특히 도덕경 13장에 나오는 ‘총욕약경(寵辱若驚)’이란 글귀에 주목했다.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똑같이 놀라고 긴장하라는 뜻이다. 회사 실적이 좋을 때 위기를 늘 생각하고 나쁜 일이 있을 때는 반전을 노리는 습관이 자연스레 들면서 2010년 이후로는 큰 위기를 겪지 않고 있다.

Q. 남 회장에게 실패란.

A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사람들은 이 말만 기억한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다. 성공을 종착역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순환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성공 뒤에는 필히 또 실패가 뒤따른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영원한 것은 없다. 유연한 사고와 실행력이 필요하다. 제일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처음 창업해 대박 난 케이스 혹은 큰 무리 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갑자기 실패나 시련에 처하면 재기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봤다. 다산네트웍스에는 회사를 나갔다 실패하고 재입사한 사례가 많다. 난 오히려 창업했다 실패하고 돌아온 이들을 우선순위로 받아준다. 더 절박하고 일을 더 잘하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패 속에서 성공이 잉태된다.

[박수호·나건웅 기자, 박영선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7호 (2019.07.17~2019.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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