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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실패를 넘어 성공한 기업들 | 위기를 기회로 삼는 新경영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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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땀이 났다. 한국 최고의 만화가, 작가들을 모아 웹소설,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바일상에서 유료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익숙지 않았다. 야심 차게 기획했던 프로젝트는 이렇게 비극을 맞았다. 당장 투자금 소진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재정 상황도 좋지 않았다. 사업을 사실상 중단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다 모바일 게임 ‘애니팡’이 눈에 들어왔다. 애니팡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임을 할 수 있는 권리인 ‘하트’를 줬다. ‘이거다!’ 싶었다. 최근 5년간 90배가 넘는 성장을 기록하며 1조5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카카오페이지의 승승장구 이면에는 이런 흑역사가 자리한다.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는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왜 안 될까?’란 화두를 안고 지속적으로 몰입한 결과 ‘기다리면 무료’ 사업 모델을 건질 수 있었다.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했다.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간 케이스는 이 밖에도 수두룩하다. 혹자는 잘 버텨서, 또 다른 이는 어려울수록 기술 개발에 더 힘을 쏟아서 등 다양한 실패와 극복 사례가 넘쳐난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경제 상황 중 시행착오와 재기 비결에서 시사점을 부디 길어 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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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경험이 기업 재도약 밑거름 된다

실리콘밸리선 실패해본 기업 우대


기업가에게 실패는 두려운 존재다.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빚더미에 앉을 가능성이 높고 재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배움의 기회로 인식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열린 ‘실패박람회’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행사다. 한때 개인소득세 국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승승장구했으나 이후 파산한 성신제 전 한국피자헛 대표, 첫 식당 사업에서 전 재산을 날린 방송인 홍석천 등이 연사로 나서 실패 경험을 공유했다. 약 5만명이 방문해 공감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올해에는 5~6월 춘천, 대전, 전주, 대구에서 박람회를 진행했으며 서울에서는 9월 열릴 예정이다.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실패를 무조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성공에 도달하기 위한 관문으로 보는 분위기가 이미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미국과 일본, 핀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실패로부터 배우는 데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으로 정평이 났다. 실리콘밸리에서 2009년 탄생한 행사 ‘페일콘(FailCon)’은 이런 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창업가와 투자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모여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성공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토론을 벌인다. 그간 자동차 공유업체 우버 공동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 공유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 공동창업자 조 게비아 등 쟁쟁한 기업의 수장들이 방문해 경험담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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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실패학’이 학문으로 자리매김

미국 심리학자이자 혁신 연구가 새뮤얼 웨스트가 지난 2017년 스웨덴에 연 ‘실패박물관(Museum of Failure)’도 눈길을 끈다. 글로벌 식품기업 크래프트하인즈가 2000년도에 선보인 뒤 2006년 판매를 중단한 초록색 케첩, 프링글스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판매한 무지방 감자칩, 구글이 개발했던 스마트 안경 구글글래스 등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제품 100개 이상이 전시됐다. 새뮤얼 웨스트는 “박물관에 전시된 제품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프로젝트로부터 통찰력을 얻고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발전을 위해 실패는 꼭 필요하다”며 설립 목적을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실패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 이이노 겐지 간사이대 교수 겸 국제실패학회 부회장 등이 대표적인 학자다. 기업이나 정부, 개인 등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원인을 찾고 성공하지 못한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구한다.

핀란드는 10월 13일을 ‘실패의 날(Day for Failure)’로 지정했다. 기업인과 교수, 학생 등이 모여 실패 사례를 분석하고 축하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린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성공가도만을 달리기는 어렵다. 실패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이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기업,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 방법을 달리해 재창업하는 경영자가 있는 곳이 오래갈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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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오뚝이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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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안타까운 것은 실패를 용인하지 못하는 국내 상황이다.

최근 정부 주도로 빚 청산, 연대보증 폐지, 재기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한 신용불량자 신세의 기업인은 “정부가 최대 6000만원까지 지원한다지만 사무실을 확보하고 직원 뽑고 사업 모델 만들고 나서 과연 1년 버틸 수 있을까 싶다. 한번 실패한 40대 대표에게 선뜻 일하겠다고 오는 사람도 잘 없다. 돈보다 싸늘한 사회 시선이 더 재기를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한상하 오뚝이창업 대표(전 재기중소기업개발원장)는 “중소벤처기업부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미래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중구난방으로 재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종합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재기기업인들이 만루 홈런만 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광현 창업진흥원장

실패 통해 배운 것이 있어야 진정 가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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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재도전 성공 패키지 사업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A 창업은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 일할 공간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사람과 기술도 필요하다. 창업자한테는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다. 재창업자의 경우 실패로 인해 상처 받고 위축돼 있을 수 있다. 실패 경험을 잘 살리면 성공 가능성이 첫 창업자보다 높은데도 그렇다. 그래서 정부는 2013년 10월 ‘중소기업 재도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재창업자 지원을 시작했다. 그 후 단편적인 자금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2015년부터 ‘재도전 성공 패키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재창업자 각자의 특성과 경험을 고려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실패 요인을 분석해 재창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Q. 참가자마다 실패 유형이 다 다를 듯한데.

A 크게 기업가적 요인(본인의 부덕·경영관리 미숙 등), 자원 요인(창업팀 미구성·자금경색 등), 사업 환경 요인(시장 검증 미흡·성급한 시장 진출·판매처 미확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창업기업의 경우 창업자 본인이 잘못해 실패한 경우가 많다. 우수한 팀원을 확보하고도 팀을 원만하게 이끌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창업자의 판단 착오로 엉뚱한 방향으로 달린 바람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 ‘어벤저스팀’이라 부러워했던 팀이 내분으로 실패한 경우도 있다. 어느 팀은 투자받고 나서 ‘실탄’이 떨어지기 전에 사업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사업을 접어야 했다.

Q. 우리 사회가 실패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하는 건 바람직한 것 같다.

A 분명 그렇다. 재창업자라면 실패를 통해 뭔가를 확실히 깨달았는지 여부를 봤다. 실패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고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이 가치가 있다. 실패한 창업자라고 다 뭔가를 크게 깨닫는 것 같지는 않다. 왜 실패했는지 철저히 반성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야만 뭔가를 깨달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KAIST가 5년 전에 내놓은 자료를 보면, 재창업 기업의 생존율은 다른 창업기업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 그런데 재도전 비율은 10%도 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만큼 상황도 달라졌고 인식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도전 창업자의 경우 경험과 노하우를 잘 살리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많이 확산됐다고 본다. ‘창업해서 실패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특별취재팀 = 박수호(팀장)·류지민·나건웅·김기진 기자·박영선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7호 (2019.07.17~2019.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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