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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아베는 왜 수출규제를 전격 단행했나-참의원 선거전 활용…韓과 협의 의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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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수출제한과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목록)’ 제외 추진은 일본 내에서도 놀랄 정도로 갑작스럽게 진행됐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밝혀온 자국기업의 실제 피해 발생 시 대응조치 원칙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일 발표된 조치가 시행된 것은 사흘 뒤인 4일. 7월 21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전이 시작되는 날이다. 일본 정부에서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참의원 선거를 고려한 조치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6년 임기 참의원은 3년 단위로 전체 의원 절반을 선출한다. 이번에는 총 124석(지역구 74석, 비례 50석)을 뽑는다. 이번 선거 대상 참의원 중 현재 자민당과 공명당은 총 77석을 차지하고 있으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번 선거 목표로 53석을 내걸었다. 목표치를 낮춰 잡아 자민당 독주에 대한 반대 여론을 억누르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현재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가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에 대한 규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는 일차적인 이유일 뿐이다. 근저에는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한 수차례 경고에도 일관적으로 무대응한 우리 정부를 향한 여론의 반감이 깔려 있다.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10월 말. 일본 측이 경제보복 등을 강조했음에도 우리 정부가 대응한 것은 올 6월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직전이다. 또 우리 정부가 제시한 안은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참여해 기금을 만들자는 이른바 ‘1+1’안이다. “자국기업 참여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이미 일본 측에서 반대 의사를 밝힌 사안이다.

일본 측 소식통은 “일본 정부에서 사실상 한국 정부가 협의에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불만도 한몫

여기에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 확산돼 있는 한국에 대한 불만도 한몫했다. 일본을 30년 이상 연구해온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최근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분위기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추락이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양국관계 회복이 가능할까 싶은 염려가 들 정도”라고 평가했다. 평소라면 ‘한국 때리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했을 법도 싶지만 현재 일본에서 큰 비판이 없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여론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아베 총리의 기습적인 수출규제를 가능하게 한 이유인 셈이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세계무역기구(WTO) 수산물 분쟁 패소 역시 아베 총리가 수출규제를 앞당긴 원인이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2년 말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후쿠시마를 비롯한 동북 지역 복구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참의원 선거전 첫 유세지도 후쿠시마였다. 또 내년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 출발지 역시 후쿠시마인 것만 봐도 이들 지역 재건이 갖는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다.

당초 1심 승소를 근거로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에서는 상고심에서도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다. 지역 주민은 물론 국민을 상대로도 수산물 수출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선전해왔으나 모든 것이 무산됐다. 가뜩이나 불만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WTO 협상단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아베 총리가 한국 규제 카드를 더 빨리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참의원 선거전 개시 직전인 7월 3일 저녁 민영방송의 당대표 토론회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비판에 유달리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총리는 “저쪽(한국)은 수산물 수입 금지에 더 많은 지역을 추가할지 모른다. 일본도 할 때는 뭐든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양국 간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 역시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 회복의 길은 험난할 전망이다. 우리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때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7호 (2019.07.17~2019.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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