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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Lifestyle] 잔을 기울이면…4캔 만원 맥주도 어느새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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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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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즐긴다!" 최근 애주가들이 똑똑해지고 있다. 만취할 때까지 들이붓는 음주문화 대신 단 한 잔을 마시더라도 제대로 알고 음미하려는 분위기가 보편화하면서 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름비가 메마른 땅을 한차례 적시고 간 지난 11일 서울 대학로에서 '비어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이날 강사로 나선 이는 김소희 오비맥주 마케팅 코어브랜드팀 부장이다. 1996년 말 오비맥주에 입사해 20년 넘게 영업 전선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국내 최초의 비어 마스터 클래스를 6년째 이끌고 있는 '맥주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초기 인류가 보리를 활용해 만들어 먹은 음식은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맥주'다. 기원전 6000년께 맥주는 보리빵이 물과 함께 자연 발효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김 부장은 "맥주를 먹으면 배가 든든해지는 것은 물론 몸도 후끈 달아오른다"며 "당시 인류의 절반이 얼어죽거나 굶어죽었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신의 선물'이라 불렀다"고 말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수도원을 중심으로 우수한 품질의 맥주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금식 기간인 사순절(3월 20일~4월 20일)마다 수도사들이 영양보충용으로 맥주를 섭취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김 부장은 "이때부터 천연 방부제인 '홉'이 맥주에 첨가되면서 하얀 거품이 나기 시작했고 맛도 한층 더 쌉싸름해졌다"며 "벨기에 맥주 가운데 800년 된 '레페', 550년 된 '호가든' 등이 중세 수도사의 양조 기술을 계승한 대표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중세 말 맥주는 주식(主食)으로 자리 잡았지만 양조사들이 넣지 말아야 할 재료들까지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에 독일에선 맥주 원료와 제조 시기에 제한을 두는 '순수령'이 공표됐다. 김 부장은 "이전까지 에일 맥주가 대세였다면 순수령 이후엔 풍부한 거품과 황금빛 색깔이 특징인 라거 맥주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며 "라거 맥주는 냉장기술 발달에 힘입어 현재 전 세계 9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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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맥주는 크게 에일과 라거로 나뉜다. 에일은 상온에서 발효되며 효모가 위로 떠오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개성 있는 상큼한 향과 묵직한 과일 맛을 느낄 수 있다. 라거는 저온에서 발효되는데 이때 효모들은 에일과 달리 아래로 가라앉는다. 톡 쏘는 맛이 강하고 청량감이 우수하다. 알코올 도수는 일반적으로 에일이 라거보다 높은 편이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비어 클래스는 맥주의 기원과 고대·중세·근대·현대로 이어지는 역사 등을 상세히 다뤘다. 참가자들은 고대 맥주를 재현해놓은 제품을 맛보기도 하고 핵심 원료인 홉, 고수 등을 눈으로 확인한 뒤 냄새를 맡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야생효모로 만든 맥주를 마신 뒤 "너무 시큼하다"며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 홉을 코에 가져다댄 후 "케케묵은 냄새가 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 단순히 귀로만 듣는 수업이 아닌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현장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됐다.

이날 클래스에선 각각의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비법도 공개됐다. 김 부장은 "호가든은 병 안에서 2차 발효가 일어나는데 이때 효모들이 바닥에 가라앉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호가든을 따를 땐 잔의 60~70%만 채운 뒤 병에 남은 침전물들을 흔들어 다시 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하면 특유의 오렌지 껍질 향도 더욱 살아나고 탄산도 강해진다"고 덧붙였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거품이 안 생기도록 잔을 기울인 뒤 절반 정도 채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병과 잔이 절대 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다음 병에 남은 나머지 절반은 높게 들어 수직으로 잔에 붓는다. 낙차가 클수록 거품이 많이 만들어진다. 이후 스키머(skimmer)로 잔 끝부분을 쓸어주면 수막 아래 농도 짙은 거품만 남게 된다.

김 부장은 "맥주는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주종이지만 의외로 잘 모르고 마시는 경우가 많다"며 "어떻게 따르냐에 따라 풍미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잘 알아두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잔이 깨끗할수록 맥주를 따른 후 기포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외부에서 마실 때 한번씩 잔의 청결상태를 점검해보면 좋다"고 덧붙였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77%가 맥주를 즐기는데 이 맥주의 상당량은 '페일라거'다. 오비맥주의 카스가 바로 대표적인 페일라거다. 김 부장은 "밭에서 갓 뽑은 상추를 씻어 먹을 때 제일 맛있는 것처럼 맥주도 국내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빠른 시간 내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며 "예전에는 제조된 지 3~4개월 후 소비자에게 전달됐는데 이젠 한 달도 채 안 걸린다"고 말했다.

최근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혼술(혼자 마시는 술)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가벼운 한잔이 행복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칼로리도 높아지지만 술에 들어 있는 열량은 체내에 들어가는 순간 휘발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수고한 '나'를 위해 맥주 한 모금 즐기는 건 어떨까.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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