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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페이지를 넘길수록…`자연의 귀`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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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사막에는 켈소 언덕으로 불리는 사구가 있다. 경사가 가파르고 모래가 상당히 건조한 곳이다. 이 언덕이 유명해진 건 모래바람이 세차게 휘날릴 때마다 기이한 노래가 울려퍼져서다. 모래 사면 꼭대기로 갈수록 한층 그러한데, 흡사 '우스꽝스러운 금관 사중주' 같다.

켈소 언덕과 관련해 조지 커즌 캐들스톤 후작은 이 같은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소곤거리는 흐느낌이나 신음이 들렸는데, 가끔은 그 소리가 에올리언하프의 한 종류와도 비슷했다. 그러다가 진동이 증가하고 소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때로는 오르간이나 낮게 뗑뗑 울리는 종소리와도 비슷해졌다."

노래하는 자연은 사구뿐만이 아니다. 상록수는 아예 일년 내내 우짖는 발라더다. 어린아이가 휘휘 하고 휘파람 소리를 내는 듯한 음향이랄까. 소리가 계속 들려오지만 숨소리도 적당히 가미된 느낌이다. 이른바 '숨 반 공기 반'이다. 상록수 노래 높낮이는 바람 속도와 나무 직경에 따라 제각각인데, 혹자는 '나무의 신음소리'라고도 부른다. '지상 최고의 사운드'를 읽다 보면 마치 이 땅의 경이로운 소리들이 귓가로 울려퍼지는 것 같다. 마야 유적지의 피라미드에서 발하는 재잘거림, 남극을 에워싼 빙하들의 삐걱댐, 바다오리들의 코골이 오케스트라,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에서 나는 얼음 녹는 소리,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벽에서 들리는 속삭임 같은.

이 책 저자는 '실내 음향학 전문가'인 트레버 콕스다. 불필요한 소리를 줄이는 데 매진했던 그가 세상 소리를 채집하는 데 전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원하지 않는 소음을 제거하느라 바빠 소리 자체를 듣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게 음향학자로서 그의 변(辨)이다. 직접적 동기는 하수구 탐사였다고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취재차 지하 하수도로 내려갔다가 불가사의한 종유석 소리에 반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소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지만 나는 여전히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 원하지 않은 소음을 제거하느라 바빠서 소리 그 자체를 듣는 것을 잊고 있었다. 제대로 된 위치에서는 음향 초점이나 하수도에서 나선형으로 퍼지는 금속성 울림 같은 '흠'도 듣기에 매혹적일 수 있었다."

인간은 오감에 좌우되는 짐승이지만, 그중 시각에 절대적으로 지배받는다. 시각 위주로 세상을 감각하다 보니 다른 감각, 특히나 청각에 가장 무심해진다. 저자 콕스가 이 땅의 소리들의 진경에 흠뻑 빠져보라고 권하는 이유다. 눈으로 보는 세계 못지않게 귀로 듣는 세계 또한 얼마나 매혹적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책장을 넘길수록, 그리고 읽고 난 뒤로, 이전보다 귀가 열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신비한 소리를 찾아 지구촌을 누벼온 저자의 여로에 차분히 동참하다 보면 우리 곁에 이토록 아름다운 소리의 세계가 있었음을 깨닫곤 경탄할 것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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