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8 (수)

[김형규 기자의 한국 술도가]평택쌀로 만든 약주 ‘천비향’, 다섯번 빚은 오양주의 깊고 단아한 맛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평택의 양조장 ‘좋은술’에선 다섯번 빚은 오양주 ‘천비향’를 비롯해 다양한 막걸리와 약주, 소주를 만든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술도 음식이다. 좋은 재료로 정성 들여 만든 게 당연히 더 맛있다. 전통주 중에서는 여러 번 거듭 빚어 만든 술을 고급으로 친다.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완성하기까지 드는 시간과 공력도 보통 술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의 양조장 ‘좋은술’에서 만드는 ‘천비향’은 무려 다섯 번을 빚어 만드는 오양주(五釀酒)다. 보통 전통주는 쌀과 누룩, 물로만 빚는다. 쌀의 전분이 누룩의 도움으로 당화를 거쳐 알코올로 변하면 술이 된다. 통상 일주일에서 보름이 걸린다. 한 번 발효 과정을 거쳤으니 단양주(單釀酒)다. 이 술에다 쌀과 누룩을 더 넣어 재차 발효시키는 걸 덧술이라고 하는데, 덧술을 한 번 하면 이양주, 두 번 하면 삼양주가 된다. 오양주는 덧술을 무려 네 번이나 한 술이다.

삼양주만 해도 고급 술로 친다. 오양주는 시중에서 여간해선 찾아보기 힘들다. 비용 문제도 있지만 만들기가 너무 까다로워 그렇다. 덧술 횟수가 많아질수록 온·습도 등 사소한 변수로 발효 과정에서 술이 잘못될 가능성이 높아지니 제품화하기가 쉽지 않다.

경향신문

이예령 대표는 오랜 연구 끝에 누룩 사용을 최소화 하면서 깊고 단아한 술맛을 끌어내는 오양주 제법을 터득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예령 좋은술 대표(53)는 수년간 실험 끝에 쌀과 물, 누룩의 양을 조절해 안정적으로 발효를 거친 오양주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술 역사의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향기’를 담았다고 해서 천비향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 번에 1t이 넘는 술이 다 잘못돼 폐기 처분하는 등 무수한 시행착오 뒤에 얻은 비법은 대략 이렇다. 멥쌀가루에 끓는 물을 부어 만든 쌀범벅에 누룩을 넣는 식으로 밑술과 덧술을 반복하다 마지막 덧술 때는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넣는다. 덧술을 마치면 20도 내외의 1차 발효실에서 한 달, 10도 내외의 2차 발효실에서 두 달 발효를 거친다. 다시 영하에 가까운 온도로 6개월 장기 저온숙성을 시키면 판매할 수 있는 술이 완성된다.

여러 번 덧술을 하다 보니 천비향에는 일반 술보다 4배가량의 쌀이 들어간다. 술은 평택쌀로만 빚는다. 미생물 활동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써 누룩 사용은 최소화한다.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누룩내가 덜하다. 천비향은 약주와 탁주, 소주까지 세 종류가 있다. 대표 제품이라 할 약주는 디저트 와인처럼 달콤하고 은은한 과일향이 일품이다. 다양한 양념의 한식은 물론 스테이크 같은 양식과도 궁합이 좋다. 알코올 도수도 16도로 어느 자리에나 두루 어울린다.

경향신문

평택을 대표하는 전통주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탄생한 삼양주 막걸리 ‘택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술은 올해 5월 ‘택이’라는 막걸리도 내놨다.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평택시장의 권유로 만든 술이다. 국산 재료로 감미료 없이 만드는 다른 고급 막걸리들은 대개 병당 1만원 이상인데, 택이는 삼양주로 빚었는데도 가격이 5000원(500㎖)으로 저렴한 편이다. 바디감이 가볍고 농밀한 맛은 덜하지만 벌컥벌컥 들이켜는 막걸리 본연의 매력은 더 좋아 국산 고급 막걸리 대중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술이다. 홍국균을 넣어 분홍빛을 띠는 삼양주 막걸리 ‘술예쁘다’(13도·2만원)도 인기다.

경향신문

좋은술 양조장에서 술 빚기 체험에 나선 방송인 정준하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고두밥을 치대고 있다. 정준하씨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각지의 이름난 양조장을 관광명소로 육성하기 위해 진행 중인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예령 대표는 남달리 술을 즐기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기왕이면 숙취 없는 좋은 술을 마셨으면 하는 생각에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1년 가양주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양조를 배웠고 2013년 좋은술을 설립했다. 2017년부터는 정년퇴직한 남편과 두 딸까지 합세해 가족이 전부 전통주 만들기에 빠졌다. 2018년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주부문 대상을 받았다.

경향신문

좋은술에선 술지게미로 미용팩을 만드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술에선 술 빚기(3만원)부터 술지게미 미용팩·과자 만들기(2만원)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체험은 10명 이상 가능하고 전화(031-681-8929)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천비향 약주(3만원)와 탁주(2만원)는 온라인 쇼핑몰이나 신세계·롯데백화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경향신문

좋은술은 경기도 평택쌀로만 술을 빚는다. 한 해 쌀 소비량이 20t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들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며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해당 지역의 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