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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일본판 ‘싸인’ 보다가 떠오른 한일 역사 -일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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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싸인―법의학자 유즈키 다카시의 사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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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분기 일본 드라마 중에는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작이 세 편이나 된다. 이달 들어 일제히 방영을 시작한 일본 티브이 아사히의 <싸인―법의학자 유즈키 다카시의 사건>, 엔티브이의 <보이스 110 긴급지령실>, 후지티브이의 <투윅스>는 각각 에스비에스 <싸인>, 티브이엔 <보이스>, 문화방송 <투윅스>를 리메이크했다. 최근 몇년 사이 일본에서 <쩐의 전쟁>, <미생>, <굿닥터>, <시그널> 등 신선한 소재의 한국 장르물을 각색한 작품이 호평받은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리메이크작의 성공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일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싸인―법의학자 유즈키 다카시의 사건>이다. 원작의 인지도부터 단연 앞선다. 실제로 일본판 <싸인>은 7월 중순까지 방영된 3분기 새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로 출발했다. 일본판에서는 양국의 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한 몇몇 설정 변화가 눈에 띈다. 가령 원작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일본에 대응하는 기관이 없어서 후생성과 경찰청의 공동 관리를 받는 가상의 ‘일본 법의학연구원’으로, 원작에서 핵심 사건을 파헤쳤던 검사 캐릭터는 독자적 수사권을 지닌 일본의 경찰 캐릭터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를 제외하면 일본판 첫 회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는 데 집중했다. 주인공 유즈키 다카시(오모리 나오)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신을 빼돌리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오프닝부터 똑같다. 콘서트장에서 돌연사한 톱스타의 시신을 부검하려던 유즈키는 경시청이 갑자기 개입해 담당 부검의를 바꾸는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자 의문을 갖게 된다. 거기에 경찰이 배치한 담당 법의학자가 과거에 부검 결과 조작 의혹을 받던 다테 아키요시(나카무라 도루)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유즈키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외압의 존재를 확신한다. 그 외압으로 위기를 맞은 유즈키가 독자적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과정까지 주요 갈등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원작의 핵심 메시지를 어떻게 옮기는가다. 원작에서 부검은 단지 사인을 밝히기 위한 행위를 넘어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애도의 성격을 띤다. 작품이 다루는 죽음에는 대부분 권력형 비리와 같은 사회적 배경이 작용하고, 주인공들은 부검을 통해 그들의 못다 한 유언을 복원해 애도를 완성한다. 일본판에서 시신 앞에 합장하려던 신입 부검의 나카조노 게이(이토요 마리에)에게 유즈키가 진실을 밝히기 전까지 죽은 자는 성불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원작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한국 시청자 입장에서는, 규명하지 못한 죽음에 얽힌 한-일 관계의 역사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진다. 원작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백골 사체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일본판에서는 분량 문제로라도 이 에피소드가 삭제될 확률이 높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억울하게 은폐된 목소리의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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