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출신 80대 노부부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던 조르주(장루이 트랭티냥)와 안느(에마뉘엘 리바)에게 시작된 불행의 과정이 심리변화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전조증상을 보이다가 갑자기 심각한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아내 안느를 남편 조르주는 헌신적으로 돌본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아내 돌보기에 조르주도 지쳐간다. 수술 후 퇴원하면서 다시는 병원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하는 아내의 간청에 따라 집에서 병시중을 하지만, 간병인들은 비싼 비용에도 친절하게 돌보지도 않는 것 같고, 비용도 조르주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터라 그만두라고 한다. 가끔 집에 오는 딸 에바(이자벨 위페르)에게조차 점차 심해지는 아내의 병세를 보여주기 싫어할 정도로 조르주는 폐쇄적으로 살아간다. 아내가 대화는커녕 빨대로 물을 빨아먹기조차 힘들어 뱉어내자 조르주는 순간적으로 아내의 뺨을 때리곤 스스로도 당황한다. 인간의 유리 같은 인내심은 금세 바닥을 훤하게 드러내게 된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조르주 본인도 80세 노인인데 혼자서 아내 병시중을 하는 것이 힘에 겨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온 반응인 것이다. 결국 조르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감정을 유도할 만큼만 피아노 음악이 간간이 나오면서 영화는 조르주의 행동에 대해 관객이 비난할 수 없도록 조르주의 심리적 추이를 따라가도록 구조화돼 있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조르주 심리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노인 돌봄 부담은 가족이 지는 것이 보편적으로 여겨져 왔으나, 이에 대해 많은 젊은 세대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효도라는 명분도 이제 해묵은 생각이 돼버린 지금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병든 노인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혜택에 대한 제도 개선과 확대는 더 미룰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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