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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헤이그 특사’ 이위종, ‘시베리아의 별’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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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주미·주러 공사 지낸 이범진 차남 / 한·일병합 후 부친 자결로 日에 항거 큰 영향 / 일생 독립운동 투신… 안중근 의거 등 참여 / 당시 불어·영어·러시아어 능한 유일 한국인 / 볼셰비키 혁명군 가담… 일본군과 전투 공로 / ‘시베리아의 별’로 불리며 러시아서 항일운동 /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선택했던 ‘잊혀진 영웅’ / 저자, 이위종 열사의 드라마틱한 삶 첫 소개

세계일보

이승우/ 김영사/ 1만5000원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이승우/김영사/1만5000원

유명 독립유공자 가운데 이위종(1884∼?)만큼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드물다. 이 책을 통해 재야 사학자 이승우(69)는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인 삶을 살다간 독립 영사 이위종의 삶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위종은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에 능한 당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의 헤이그 특사는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거부당했지만 이위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어 성명서를 평화회의에 참가한 각국 기자들에게 돌려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 사실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이위종의 러시아인 후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헤이그 특사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제정러시아 장교였던 그는 러시아의 귀족 신분으로 안락한 미래가 보장되었으나, 시베리아에서의 거친 삶을 살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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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이상설, 이위종의 사진(왼쪽부터). 김영사 제공


이위종은 대한제국의 주미 공사, 주러 공사를 지냈던 이범진(1852~1911)의 둘째 아들이다. 이범진은 고종황제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아관파천을 주도했고 이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조사하면서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 이범진은 헤이그 특사 활동을 지원했고 의병단체 조직을 측면 지원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자결함으로써 일본에 항거했다. 일생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위종의 사상적 기저에는 부친의 행적이나 생각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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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사 부임 초기의 이범진과 이위종(오른쪽)이 찍은 사진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이위종은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에서 생활하며 외교관으로 기초소양을 익혔다.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것을 계기로 당시 제국주의가 횡행하는 세계 정치적 흐름과 국제질서를 파악했고, 훗날 독립군으로 활약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헤이그 밀사 파견 이후 이위종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베리아에서 항일운동에 몰두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계획에 가담했고 연해주 한인 공동체의 지도자 최재형, 간도 관리사 이범윤과 함께 의병단체동의회를 조직했다. 국내진공작전을 기획했으나 러시아와 일본의 밀약으로 실패하기도 했다.

이위종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대국 러시아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제정러시아 장교가 되고자 블라디미르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러시아 장교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그는 볼셰비키 혁명군에 가담한다. 러시아 여인과 결혼해 이후 귀족 지위까지 받았던 이위종이 공산당을 선택했다. 공산당의 사상적 모토였던 식민지 해방과 반제국주의 이념이 조국 독립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상황에 비춰 선각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으로 사가들은 풀이한다. 이위종은 혁명군 장교로 시베리아에 진주한 일본군과 전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적기훈장을 받기도 했다.

군사 지휘와 전투 능력을 발휘하여 ‘시베리아의 별’이라고 불리게 된 이위종은 그러나 실종되어 생사가 알려지지 않았다. 저자는 일본의 기밀문서와 전문을 인용해 이위종의 행방불명과 의문의 죽음에 일본군이 개입했으리라 추정한다. 대규모 고려인 군대를 조직하려 한 이위종의 첩보를 입수한 일본군의 제거 음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위종의 드라마틱한 생애는 당시 한반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반영한다. 명문가 자제에서 독립운동가로, 러시아 귀족에서 혁명군 장교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던 이위종은 구한말 이후 외세에 휘둘려 방향을 잃어버린 한반도의 운명과 궤를 같이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헤이그의 신문기사와 기자들 상대의 연설문을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다. 함께 헤이그 특사로 활동했던 이상설과 이준에 관련된 자료는 그런대로 축적되어 있지만 이위종 열사에 대해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책에서 이위종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에 체포된 뒤 죽음을 맞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이는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내용이다. 일본 극비 외교 문서 두 건이 게재되어 있지만 이 또한 검증이 필요하다. 저자는 최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책 내용의 70~80%는 역사적 근거에 따라 서술했고 나머지는 창작에 기반했지만, 훗날 정확한 규명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에 남아 있을 기록을 찾아 사실에 근거한 이위종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후손들의 작업이 필요하다.

이위종은 1962년 헤이그 특사로서의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이위종의 외손녀 류드밀라 예피모바(83)와 외증손녀 율리아 피스쿨로바(52) 전 모스크바대 역사학부 교수는 2015년 귀화 형식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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