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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중앙은행 발권력 흔들라…미·G7 “페북 암호화폐 리브라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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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금융 산책]

페이스북, 2020년 리브라 출시 예정

뱅크런, 불법 자금 세탁 활용 우려속

"규제 문제 해결까지 시간 가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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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 로고와 작은 인형을 함께 이미지화한 일러스트.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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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힘은 돈을 찍어내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른바 발권력이다. 통화정책의 키를 쥔 중앙은행의 행보에 시장과 경제 주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화폐 발행과 관련된 중앙은행의 독점적 권한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암호화폐가 등장하면서다. 그럼에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기존 암호화폐의 도전을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강자의 등장이 예고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페이스북이 발행하려는 암호화폐 ‘리브라(Libra)’ 이야기다.

리브라는 2020년 페이스북이 출시할 예정인 암호화폐다. 비트코인과 달리 허가형 블록체인 기반이다. 비자ㆍ이베이ㆍ우버 등 28개사가 참여한 리브라협회가 의사결정을 독점한다. 여러 통화로 구성된 은행 예금 등 실물자산에 연동해 가치가 보장된다. 채권형 상장지수펀드(ETF)와 비슷하다.

페이스북의 계획대로 리브라가 세상 밖에 나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규제 당국의 우려와 견제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가장 강력하게 제동을 거는 곳은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리브라의 신뢰성 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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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마커스 칼리브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7일 미국 워싱턴의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의 청문회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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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는 더 적극적이다. 지난 16~1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은행위원회)과 하원(금융서비스위원회)에서는 리브라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리브라 운영사인 ‘칼리브라’의 데이비드 마커스 대표는 청문회에서 의원들에게 난타를 당했다.



"리브라는 테러보다 미국 더 위태롭게 할 수도"

특히 개인정보 유출로 논란에 휩싸였던 페이스북이 금융 데이터를 다루는 것에 대한 의원들의 우려가 컸다.

서로드 브라운 상원의원은 “페이스북이 사람들의 은행 계좌를 가지고 실험할 기회를 주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사람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소셜미디어회사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라고 말했다.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은 리브라의 잠재적 파급력을 9ㆍ11 테러에 비교하며 “리브라는 테러보다 미국을 더 위태롭게 할 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레고리 믹스 하원의원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언급하며 리브라의 위험을 지적했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리브라의 발행 계획 축소와 IT기업의 은행업 진출을 막는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리브라에 대한 반발과 견제는 미국만이 아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샹티이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에서도 리브라에 대처하기 위한 포괄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소비자 데이터 보호 및 통화정책에 대한 충격이라는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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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모니카 크롤리(왼쪽) 미 재무부 대변인이 18일(현지시간) 프랑스 샹티이에서 열린 주요7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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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공의 적이 된 것은 리브라가 금융시스템 무력화와 화폐 및 통화정책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회원은 23억8000만명에 이른다. 금융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가 은행예금의 10%만 바꿔도 리브라 적립금은 2조 달러가 넘는다. 은행의 지불능력 떨어지고 해외로 자금 유출이 이어지면 금융시장 뒤흔들 수 있는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등이 발생하면 각국 통화가 아닌 리브라로 자금이 쏠리는 일종의 ‘뱅크런’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므누신 "암호화폐가 제2의 스위스 비밀계좌 되는 일 없을 것"

불법 자금의 돈세탁에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도 크다. 데이터 보안과 유출 문제도 있다. 페이스북의 소셜데이터와 금융데이터가 결합되며 개인정보 유출피해가 일파만파로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암호화폐가 ‘제2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자금세탁 등 불법 행위에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리브라의 등장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도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리브라가 각국의 통화를 대체하게 되면서 돈 줄을 풀고 죄는 등의 통화정책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의 거센 반발과 견제에 대해 포브스는 “리브라의 (ETF와 같은) 증권적 성격, 불법 자금에 쓰일 가능성 등 표면적 이유 외에 숨겨진 이유도 있다”며 “리브라가 중앙은행의 역할로 여겨졌진 화폐 독점권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페이스북이 리브라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각국 정부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있다. 일개 기업이 세계 금융 시장을 뒤흔들만한 통화를 쥐락펴락할 권한을 갖게 될 수 있어서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의 압박에도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시범 사업 실시나 계획 중단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다만 마커스 대표는 “(의회에서 지적한) 법적 문제 등이 해결될 때까지 리브라를 출시하지는 않겠다”며 한발 물러선 입장을 밝혔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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