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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이상한 수의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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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양도통지 업무 특정업체와 수의계약… 특허 연관성 논란 일자 입찰로 변경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ㄱ씨는 지난 4월 말 전세기간이 만료됐지만 아직 전세금을 받지 못했다. 집주인은 돈이 없다면서 새로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있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깡통전세’를 겪게 된 ㄱ씨는 다음 전세계약 때는 반드시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겠다고 생각했다.

깡통전세를 우려한 세입자들이 전세금반환보증보험으로 몰리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 실적은 총 7만3381건, 보증금액은 14조4149억원을 기록했다. 반년 만에 지난해 보증금액 실적의 75%를 넘었다.

전세금반환보증은 계약 만료 후에도 임차인(세입자)이 전세금을 받지 못할 경우 HUG나 서울보증보험과 같은 보증기관이 임대인(집주인) 대신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HUG가 2013년 9월 이 상품을 출시한 이후 가입 실적이 2016년 2만4460건, 2017년 4만3918건, 2018년 8만9351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전세금반환보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체의 약 5% 정도가 전세금대출과 관계없이 보증 가입하는 경우이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전세금대출을 받으면서 보증 가입하는, 흔히 ‘특약보증’으로 불리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보증서를 발급할 때 임대인에게 ‘채권양도통지’ 절차를 거치게 된다.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를 HUG가 가져간다는 사실을 집주인에게 알리는 것이 주된 업무다. 이 과정에서 유선전화로 통지가 제대로 도달했는지, 전세 계약기간과 보증금의 액수 등 전세계약의 내용이 맞는지 확인한다. 이후에도 매월 경매 발생 여부나 매매나 증여 등 임대인 변동 여부를 조사하고, 임대인이 바뀔 경우 채권 양도사실을 알려준다.



경향신문

지난 6월 14일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깡통전세를 우려한 세입자들이 전세금반환보증보험으로 몰리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올해 상반기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 실적이 지난해 전체의 75% 수준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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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로 수의계약 문제 덮나”

초창기에 보증기관 직원이 직접 하던 업무였지만 신청건수가 늘면서 위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부동산 권리보험의 조사기관이 맡았다. 은행은 전세자금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하면서 손실을 막기 위해 손해보험사의 권리보험에 드는데 보험사 역시 사고 회피를 위해 보험을 인수하기 전 권리조사 기관에 위탁해 계약의 위조·사기 여부나 소유권, 임차권 등 권리관계에 문제가 없는지를 조사한다.

HUG도 2013년 전세금반환보증을 출시하면서 권리조사기관에 채권양도통지 업무를 위탁했다. 위탁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수의계약’을 택했다. 수의계약은 경쟁에 부치지 않고 계약 내용을 이행할 자격을 가진 특정인과 계약을 체결하는 계약방법을 말한다. 흔히 ‘업무와 관련한 특허가 있는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는다. 입찰을 할 경우 특허가 있는 업체의 특허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A사가 수의계약을 할 수 있었던 ‘전세대출 시스템’ 특허가 채권양도통지 업무와 관련이 없다는 게 분명해지면서 불거졌다. 업체 관계자들은 A사가 부당하게 HUG와 수의계약해 5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7개 권리조사기관이 약 400억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는데 전체 시장의 약 88%를 차지하는 A사의 독점적 지위를 더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특허청 등의 심사 결과는 채권양도통지 업무가 특허 없이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A사의 특허는 소위 ‘비즈니스 모델 특허’로 컴퓨터나 기계 시스템 상에서 작동하는 걸 특허 대상으로 한다. 사람이 행동하거나 사람이 결정하는 업무가 포함되면 안 된다. 그런데 통지서를 발송하고, 전화로 임대인 본인 여부와 통지서 도달, 계약 사실을 확인하거나 이후 경매 발생이나 소유자 변동 여부 등을 등기부등본으로 확인하는 채권양도통지 업 무는 모두 사람이 관여하는 일이다. 관련 업체의 질의에 특허청은 “채권양도통지와 같은 준법률행위는 자연법칙을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발명으로서 성립 가능성이 없을 것”이며 “특허발명의 보호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 없겠다”고 회신했다. 입찰로 바꿔도 A사가 보유한 특허를 침해할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다.

A사의 특허를 감정한 한 변호사(변리사)는 채권양도통지 이후에 이뤄지는 권원(소유권 등을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 관리 방법·시스템과 관련한 내용을 제외하곤 특허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특허 자체가 무효는 아니지만 특허의 내용과 실제 (HUG가) 발주한 업무내용의 범위가 다르다”며 “내부적으로 HUG가 특허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받는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HUG는 전세금반환보증은 2017년부터, 덩치가 큰 전세금안심대출보증은 올해부터 입찰로 바꿨다. 지난 5월 입찰공고문을 냈고 이달 중 업체를 최종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HUG는 특허를 이유로 수년간 입찰로 해야 한다는 업계 요구를 거부했다”며 “이제 입찰로 돌린 건 문제가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이나 책임자 문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찰 평가항목도 A사에 유리한 구조라고 비판했다. 그는 “입찰로 A사를 선정해 과거의 잘못된 수의계약의 문제점을 덮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혜성 수의계약 아냐”

이에 대해 HUG 관계자는 “예초에 수의계약을 했던 이유는 특허가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최근 검토 결과 특허가 업무와 큰 관련성이 없다고 보고 입찰로 바꿔도 문제가 없겠다고 판단했다”며 “국회에서 공공기관의 수의계약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해서 바꾼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땐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옳다고 본다”며 “당시엔 특허에 조심스러웠고 업무규모도 작았는데 지금은 빵이 커지다보니 수의계약으론 안 된다고 보고 출발점에서부터 하나씩 고쳐 입찰로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A사는 한국감정원 임원 출신들이 세운 업체다. A사는 이를 회사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업계는 부동산 공시지가 조사와 관련 통계를 작성하는 한국감정원과 HUG의 특수관계가 수의계약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 감사원에서는 공공기관의 특혜성 수의계약이 단골로 지적받는다. HUG 관계자는 이에 대해 “채권양도통지 업무의 중요성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서이지 특정 업체의 편리를 봐주기 위해서는 절대 아니다”라며 “예전에 은행 등 금융권에서 채권양도통지 업무를 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해 특정업체에 유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권리보험 시장에서 A사의 독점이 강화되는 것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리인상 등 경제 상황에 따라 특정일에 대출수요가 폭증하거나 전산장애가 발생할 경우 한 곳의 권리조사기관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이 경우 부실한 조사로 보험사고가 늘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고는 보험사 손해율 상승과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대출 신청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농협손해보험은 지난 7월 12일 입찰공고를 내 기존 3곳의 권리조사기관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업체 한 곳을 새로 선정하기로 했다.

심형석 미국 사우스웨스턴캘리포니아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조사업무를 굳이 한 곳에 주기보다 경쟁을 시키는 것이 가격을 떨어뜨리고 전체 조사업무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며 “조사업체를 다변화시킬 필요가 있는데 한 곳에 몰아주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고 말했다. 농협손해보험 측은 “조사회사별로 담당지역이 달라 전세자금 신청 정보를 공유할 때 문제가 있었다”며 “업체 수를 다수 선정해 경쟁으로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것보다는 정보공유를 통한 중복·사기대출을 방지하는 게 더 좋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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