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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사설]일본 수출규제 대응 급하나 ‘화학물질’ 규제완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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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일본 수출규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화학물질 규제 일부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신속한 출시를 도와 일본이 수출규제한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정부 대책에는 연구·개발 분야 등의 특별연장근로 인정·금융지원·세액공제 등의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대책은 일본이 우리 경제의 아픈 곳을 집중 공격하고 그에 따른 충격이 작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를 풀어서라도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화학물질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화학물질이 가진 독성만큼이나 위험하다. 정부의 규제완화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을 겨냥한다. 화평법 등은 경북 구미 불산 누출사고 등을 계기로 제·개정된 뒤 2015년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는 신규 또는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되는 화학물질의 등록과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했다. 2030년이면 1t 이상 화학물질 정보관리가 가능해진다. 안전 기준도 79개에서 400여개로 늘렸다. 기업들은 법 시행 후 기준 충족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법의 제·개정 취지인 국민의 건강·환경 보호는 정착돼 가고 있다. 그런데 애써 만든 법을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를 빌미 삼아 무력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화학물질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결과는 치명적이다. 2012년 구미4공단 불산 누출사고 당시 노동자 5명이 숨졌고, 소방관 18명이 부상했다. 고통을 호소한 주민만 1만2000여명이었다. 2011년 경북 칠곡 ‘미군기지 캠프 캐럴 고엽제 매립사건’의 피해는 가늠조차 어렵다. 화학물질사고는 가습기 살균제처럼 예고 없이 찾아와 엄청난 재앙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국내에 유통 중인 화학물질 4만3000여개 중 상당수는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화학물질 규제가 완화되면 국민 불안은 더 커지고 관리체계와 기업의 안전의식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올해 초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SDI 연구원 황모씨처럼 지금의 규제에도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규제를 푸는 대신 소재 개발을 위한 기업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도 노동자 안전에 더 많은 투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다.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렇다고 국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안전판까지 허물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여우를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점을 정부와 기업은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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