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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日 '추가 보복' 이달말 윤곽…최악의 시나리오도 대비해야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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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안보상 우호국가 리스트에서 韓 제외시 전산업 영향권…이달 말까지 외교 역량 총동원하되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 / 국내 굴지의 반도체기업 고객사·협력사 우려 표명…하반기 실적 전망의 최대 변수로 日 수출규제 꼽아 / 한일 갈등 넘어 글로벌 경제로 확산하는 모습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 파장이 점차 확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이 실제로 수출 심사 때 우대하는 안보상 우호국가(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반도체·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전(全)산업이 영향권에 들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추가 보복 여부가 사실상 판가름 나는 이달 말까지 국가적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되,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발효가 15일 이상 지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 글로벌 고객사와 협력사의 우려 표명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TSMC의 마크 류 회장은 "한일 통상 갈등이 간단치 않은 상태"라면서, 하반기 실적 전망의 최대 불확실성 요소로 일본의 수출규제를 꼽았다.

애플·아마존 등 미국 IT 강자들도 수시로 한국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공급 차질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태 초기부터 예견된 일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이미 한일 갈등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려로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발동 이후 공급 차질 우려로 현물시장에서 D램 가격은 품목에 따라 최고 25% 올랐다.

일본의 추가 보복 여부는 이달 말쯤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백색국가 리스트 배제 법령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 절차는 24일 마무리된다. 일본은 그 뒤에는 언제라도 각의를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백색국가 리스트 배제는 지금까지와 다른 전면전을 의미하고, 그 파장은 매우 심각하다며 정부는 23∼24일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부당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일본의 의견수렴에 참여해 우리의 입장을 강하게 밝혀야 한다.

세계일보

이번주가 한국의 '화이트(백색) 국가' 제외를 막을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우방국 명단으로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의 의견수렴 마감 시한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개최 일자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정부는 일본과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선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2∼23일쯤 일본 정부에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과 철회를 촉구하는 이메일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일본은 지난 1일,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함께 고시했다. 법령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 마감 시한은 24일까지다. 의견은 일본 정부가 고시한 이메일 또는 전자정부 시스템에 제출하면 된다.

산업부는 "일본에 보내는 의견서는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집대성한 내용이 될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와 증거를 모두 넣어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백색국가 배제 여부를 결정할 일본 정부의 각의 개최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만약 각의에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빼기로 결정한다면 개정안은 공포 21일 후부터 시행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참석해 일본이 백색 국가 제외 결정을 언제 내릴지 묻는 질의에 "오는 24일까지 의견수렴을 하고 빠르면 그 직후 각의를 열어 결정할 수도 있다"며 "7월 말∼8월 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단 각의 결정이 내려지면 되돌리기가 어려운 만큼 그 전에 일본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韓 '화이트국가' 제외 막기 위해 국제사회 설득 총력전

산업부는 12일 실무자(과장)급 양자협의에서 의견수렴 마감일인 24일 이전 고위(국장)급 양자협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은 수용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을 압박할 또 하나의 카드는 23∼2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정식 의제로 올라갔다.

한일 양국은 이례적으로 본국 대표를 파견해 발언하도록 했다. WTO 회의는 주제네바 대사가 발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해당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을 파견해 국제사회를 보다 확실하게 설득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에서는 산업부, 일본에서는 경제산업성 국장급 인사가 간다.

만약 한국이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된다면 비(非) 전략물자 수출도 규제할 수 있는 ‘캐치올(Catch all)’ 제도에 따라 식품과 목재를 뺀 거의 모든 산업이 영향을 받게 된다.

◆日, 식품 추가 규제도 예고

일본은 식품 역시 비관세장벽을 통해 추가 규제할 것을 시사하고 있어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에서도 한국과의 극한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노가미 다카시 일본 미세가공연구소 소장은 최근 전기·전자 분야 전문지인 EE타임즈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한국은 반도체 메모리와 유기EL 제조에 필요한 소재와 장치에서 가급적 빨리 일본을 배제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일본의 반도체 소재·장치 제조사는 한국 주요 기업과의 사업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일보

하지만 한국의 거듭된 대화 요청에 일본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데다, 19일에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을 논의할 중재위원회 구성에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갈등이 풀릴 기미가 현재로선 보이지 않아 장기전이 될 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산업부는 "백색 국가 배제는 국내외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며 "정부는 한국이 일본의 백색 국가에서 제외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수출규제 장기전 가능성 높아"

우리나라는 올 상반기 미중 무역전쟁을 겪으면서 수출 분야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수출액은 작년 12월부터 7개월째 감소했고, 6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3.5% 줄며 3년 5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특히 화웨이 제재 등으로 전자기기 시장의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수출 부진이 심화했다.

IHS마킷 글로벌 전자기기 구매관리자지수(PMI)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7개월 연속으로 전 세계 전자기기 분야의 전월 대비 신규주문이 감소하고 있다. 이는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한 시기와 겹친다.

이 와중에 일본이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 등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강화하자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2%에 가깝게 낮추며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블룸버그가 이달 43개 IB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2.1%였다. 지난달 조사치 2.2%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IHS마킷과 ING그룹이 한국 성장률을 1.4%로 내다보며 가장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가 1.5%, 노무라증권과 데카방크, 모건스탠리, OCBC가 1.8%를 점쳤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전망치는 2.0%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타격, 제대로 회복도 못했는데…

문제는 일본의 제재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의 긴장 관계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백색 국가 제외 조치를 강행할 가능성이 커지는 형국이다.

이럴 경우 한국의 성장률 전망은 추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제재가 장기화하면 거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기에 향후 4주간 경과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별도 보고서를 내고 현재는 한국의 성장률을 2.0%로 전망하지만, 양국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맞서 공급 체인이 심각하게 망가질 경우 성장률이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의 조치로 반도체 생산이 10%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2019∼2020년 평균 성장률은 기존 2.1%에서 0.5%포인트 내린 1.6%로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고려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8%로 내리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백색 국가 제외 조치 영향이 포함되지 않았다.

◆한일 무역분쟁, 세계 경제 타격 불가피

세계 경제 타격도 불가피하다. 각국이 원자재와 중간재, 최종재를 수입·수출하며 촘촘한 글로벌 가치사슬을 형성하면서 무역분쟁이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1270억 달러(한화 약 149조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의 반도체 생산·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반도체 D램과 낸드플래시를 사용하는 각종 전자기기도 연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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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브 비스와스 IHS마킷 아시아태평양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한일 무역 긴장은 새로운 무역 전쟁의 방아쇠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 악영향을 우려했다.

그는 "아시아국가의 수출이 이미 미중 무역 협상과 글로벌 전자기기 신규주문 감소로 강력한 역풍을 맞은 상태에서 일본의 조치가 세계 교역에 긴장을 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몇몇 경제 대국이 무역 제재를 정치적 수단으로 쓰는 일이 늘어난 것이 지난 1년간 세계 교역과 신규 수출 주문을 약화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수출규제 여파, 중국에도 영향…반도체 생산 지장

일본 정부의 한국 상대 수출규제 조치 여파가 중국에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일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제재대상 3개 품목 중 하나인 불화수소 일부가 중국에 수출된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3만6800톤 상당의 불화수소를 한국에 수출했다. 같은 해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불화수소는 4050톤 상당으로 추정된다. 중국 세관통계도 지난해 한국산 고순도 불화수소 수입량을 4000톤 가량으로 집계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일본에서 한국을 경유해온 것이다.

이들은 삼성전자 낸드플래시메모리공장이 있는 산시성과 SK하이닉스 D램 공장이 있는 장쑤성으로 보내진다. 신문은 "(한국을 경유한 불화수소가) 한국 반도체 제조업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중국공장에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의 10~20%가량은 중국공장에서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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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이를 토대로 일본 정부가 8월 말쯤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고, 이로 인해 중국공장으로의 첨단재료 공급이 지연될 경우 세계 반도체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문은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불화수소 한국 수출이 정체될 경우 한국에서 중국으로의 수출도 정체돼 양사(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국 "문 정부, '서희' '이순신' 역할 동시 수행"…국민 지지 강조

한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본 국력, 분명 한국보다 위다"면서도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고 밝혔다.

조 수석은 이날 페이스북에 "외교력을 포함한 현재 한국의 국력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며 "병탄을 당한 1910년과는 말할 것도 없다"고 명시했다.

세계일보

그는 "물론 제일 좋은 것은 WTO 판정이 나기 전 양국이 외교적으로 신속한 타결을 이루는 것"이라며 "당연히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국익수호를 위해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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