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1 (월)

작은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하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성민 박사의 톡팁스-12]

매일경제

데이비드 레터맨 /사진=AP


◆작은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건네라

30년 넘게 공중파 방송에서 토크쇼를 진행한 데이비드 레터맨. 1947년생 데이비드 레터맨은 72살 올해도 여전히 현역이다. 수염을 길러 요즘은 링컨 대통령처럼 뵌다.

데이비드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The David Letterman Show)'(1980, NBC)를 시작으로, '철야영업(Open All Night)'(1981, ABC), '데이비드 레터맨과 함께 하는 늦은 밤(Late Night with David Letterman)'(1982~1993, NBC), '데이비드 레터맨과 함께 하는 한밤 쇼(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1993~2015, CBS)까지 진행해왔다. 미국의 3대 공중파 방송국을 전부 돌면서 토크쇼를 진행한 대단한 사람이다.

2015년 은퇴를 선언하고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결국 데이비드는 방송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데이비드의 상업적 가치를 아는 방송 제작자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4G 시대 개막과 함께 야심차게 출범한 인터넷 미디어 그룹 넷프릭스에서 자신의 토크쇼를 론칭하며 2018년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데이비드가 론칭한 프로그램은 '오늘의 게스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 데이비드 레터맨 쇼(My Next Guest Needs No Introduction with David Letterman)'.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데이비드는 소개가 필요 없는 초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공중파 방송국의 토크쇼에서 그래왔듯 데이비드는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에서도 여전히 타고난 말솜씨를 과시한다. 어떤 초대 손님도 데이비드 앞에서는 숨겨놓은 본심을 털어놓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데이비드는 어떻게 말문을 열까?

데이비드는 순식간에 초대 손님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사적 친분이 있든 없든 관계가 없다. 방송에 출연한 초대 손님이 소파에 앉자마자 데이비드는 무장해제를 시킨다. 지나가는 말투로 초대 손님의 일상에 관련된 사소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면 초대 손님은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토크쇼는 데이비드의 페이스가 된다. 기술 좋은 최면술사가 최면을 걸 듯 데이비드는 짧은 시간 동안 초대 손님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데이비드의 마법이다.

◆거창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데이비드는 자신의 토크쇼에 도널드 트럼프 회장을 초대했다. 당시에는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도 전이었으므로, 트럼프 회장은 NBC 방송에서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2004~2017)를 진행하는 부동산 재벌이었다. 물론 트럼프 회장의 개인 인기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오늘 초대 손님은 미국에서 유명한 냉혹한 부동산 거물(cut-throat real estate mogul)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초대 손님 도널드 트럼프 씨를 환영해주십시오."

데이비드가 소개를 하자, 요란한 음악과 함께 트럼프 회장이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왔다. 특유의 장난기 어린 몸짓으로 방청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트럼프 회장. 그러자 데이비드가 조심스럽게 걸어가서 악수를 하고, 트럼프 회장에게 앉을 자리를 권했다.

바로 그때 참 묘한 일이 벌어졌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데이비드가 트럼프 회장을 만나는 곳은 방송국에 만든 텔레비전 스튜디오였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트럼프 회장이 데이비드의 거실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에 빠진 것이다. 데이비드의 기술이었다.

"새로운 소식 하나를 들었는데, 집안 식구가 늘었다죠? 사내 아이, 손자라고요?"

트럼프 회장이 자리에 앉고, 두 사람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지나가는 말처럼 트럼프 회장에게 새로 늘어난 식구에 대해서 물었다. 마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우연히 전해들은 서로의 이야기로 근황을 묻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예, 어린 사내예요. 제럴드와 이방카의 아들 조지프입니다. 아주 기뻐요."

트럼프가 이야기를 하자, 데이비드는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물었다.

"손자가 전부 몇이시죠?"

"6번째입니다. 애들이 제게 할아버지라고 부르죠. 손주가 6명인데, 아주 좋아요."

손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데이비드는 트럼프의 마음을 열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할아버지라는 사실에 만족한 것 같았다. 데이비드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했다.

"방청객 가운데에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즐거움과 함께 공포를 조합하는 것이라 말하는 분이 있어요. 트럼프 씨, 당신의 마음은 어느 쪽이 더 차지하고 있습니까?"

데이비드가 묻자마자, 트럼프 회장이 곧바로 신나는 표정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매일경제

미국 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맨 /사진=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작은 에피소드로 마음을 연다.

'오늘의 게스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 데이비드 레터맨 쇼'의 초대 손님들은 정말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람들이다. 전직 대통령 버락 오바마,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세계적인 래퍼 카녜이 웨스트, 커밍아웃을 한 토크쇼 진행자 엘런 디제너러스 등 각계각층의 인물들이다. 데이비드는 그들이 가장 잘 대답할 수 있는 일상 관련 작은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건넨다.

세계적인 래퍼 카녜이 웨스트가 출연했을 때, 데이비드는 "오늘 아침은 뭐 드셨어요?"라고 물었다. 그가 "계란프라이와 스무디를 먹었다"고 말하자, "하루에 세끼를 드시나요?"라고 또 물었다. 대답을 듣고, "몸무게가 얼마냐?"고 물었다.

배우 겸 가수 티파니 해디시와 만났을 때, 데이비드는 "이상하게도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네요"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고는 "무엇보다도 그 드레스요, 사람들이 그 드레스를 두고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지만, 좋아요"라고 말했다. 흰 드레스만 고집하는 그를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말문을 튼 것이다. 그러자 티파니는 자신의 흰 드레스를 보며, "이 드레스를 참 좋아해요. 점점 끼네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 원 5회 우승자 루이스 해밀턴을 만나서는 "이것 참 설레네요. 제가 레이싱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인디애나폴리스 출신이에요. 레이싱을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라고 운을 뗐다. 루이스 해밀턴도 여러 차례 우승한 바 있는 매년 5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리는 500마일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데이비드의 마법은 이것이다.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말하게 한다. 아침에 뭘 먹었는지, 매번 입는 드레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동차 경주대회가 매년 열리는 곳 출신이라든지 같은 질문에는 포장이나 과시가 담길 수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에피소드의 위력이다.

"작은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건네라. 자신도, 상대도 솔직해진다. 그럼 마음이 열린다."

매일경제

[이성민 미래전략가·영문학/일문학 박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