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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트럼프, 한·일 갈등 중재 의사 언급…아베, 무역전쟁 방아쇠 당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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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화이트리스트’ 의견수렴 24일 마감/ 정부, 23일 철회 촉구 의견서 제출 예정/ 23∼24일 WTO 이사회 정식의제 올라/ 실국장급 대표 파견 국제사회 설득 올인/ 장기전 대비 피해 대책 마련 서둘러/ 日 대체할 반도체 소재 관세 인하 검토 / 트럼프, 침묵 깨고 첫 중재의사 언급 / “양측 갈등 상황 심상치 않다” 판단 “동맹국과 대화”… 볼턴 양국에 급파

세계일보

24일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 위한 절차로 진행 중인 ‘의견수렴’을 마감한다. 비슷한 시기 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정식의제로 올라간다. 일본이 수출규제 방침을 강행하며 한·일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길지, 안팎으로 자충수 논란을 빚은 경제보복 조치를 당분간 유보할지, 이번 주가 그 향배를 가늠할 분수령이다. 우리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일본이 쏘아 올린 공포탄에 맞불을 놓는 한편 일본이 경제보복 조치를 철회하도록 마지막까지 일본 정부와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3일 일본 정부에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따지고 철회를 촉구하는 이메일 의견서를 보낼 예정이다. 일본의 법령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 마감 시한(24일) 하루 전이다. 앞서 지난 1일 일본은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민간단체들도 23∼24일 별도의 의견서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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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에서 선박에 수출용 컨테이너를 적재하는 작업이 한창인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의견 수렴 후에는 일본 각의에서 한국의 백색국가 배제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각의 개최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달 말 안팎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만약 한국이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된다면 비(非)전략물자 수출도 규제할 수 있는 캐치올(Catch all) 제도에 따라 식품과 목재를 뺀 거의 모든 산업이 영향을 받게 된다. 각의에서 결정이 내려지면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우리 정부는 그 전에 일본을 설득하는 데 총력전을 펼칠 예정이다.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 중 하나는 국제사회의 입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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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2∼2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가 그 첫 무대가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정식의제로 올랐으며, 한·일 양국은 이례적으로 본국 대표를 파견해 발언하기로 했다. WTO 회의는 주제네바 대사가 발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각각 대표를 파견해 국제사회를 적극 설득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에서는 산업부, 일본에서는 경제산업성 실국장급 인사가 간다.

산업부 관계자는 21일 “일본은 수출물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 기업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나아가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우리 주장의 핵심”이라며 “160개국이 참여하는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조치가 WTO가 지향하는 자유무역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160개 회원국의 공감을 이끌어내 개별적인 지지 선언이나 후속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이번 WTO행의 목표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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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시한을 앞두고 재검토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 역시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요미우리신문 등은 이에 대해 “한·미·일의 대북 공조에 구멍이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전해 미국이 일본에 압력을 가하도록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보도했다.

최근 일본 내부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경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일본의 규제조치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 역시 한국 정부에 고무적이다. 유노가미 다카시(湯之上隆) 일본 미세가공연구소 소장은 최근 전기·전자 분야 전문지인 EE타임스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결과적으로 일본의 반도체 소재·장치 제조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과의 사업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일본의 자해’(Japan’s self-harm)는 무모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양국이 강경대응으로 평행선을 달리고 국민감정까지 악화되면서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일본을 대체해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반도체 소재 등의 관세를 최대 40% 깎아주는 ‘할당 관세’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앞서 19일에는 주요 화학물질 등의 연구개발(R&D)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필요 시 신규 화학물질의 신속한 출시를 지원하는 등 ‘단기 대책’을 공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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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뉴저지 모리스타운 공항에서 취재진에게 손 인사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갈등 해소를 위해 양국 정상이 원하면 관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모리스타운=AFP연합뉴스


◆“한·일 정상 요청 땐 갈등 해결 나설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한·일 갈등과 관련해 “양국이 원하면 관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로 한·일 갈등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재 의사를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양측 갈등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가 글로벌 무역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데다 한·미·일 안보 공조의 핵심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점을 감안해 한·일 갈등의 조속한 해결에 나서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한국과 일본에 급파하는 데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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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18일 오전 세종시 어진동 유니클로 앞에서 '일본 경제보복 규탄!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정권 규탄과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日의 세계기술 공급망 교란 우려 고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한·일 갈등과 관련해 양국 정상이 다 원하면 나는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한 국내외 비판 여론을 감안한 행보로 보인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 기업들은 세계의 지배적인 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라며 “만약에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중단하면 그 고통은 전 세계 기술 공급망으로 파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현재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본과 한국의 싸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것만큼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美, 한국의 GSOMIA 탈퇴 검토 ‘전전긍긍’

미국은 한·일 갈등이 오래 지속할수록 대중 견제 등에서 한·미·일 공조 균열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지난 18일 ‘GSOMIA 재검토’ 발언이 나오자마자 “미국은 한·일 GSOMIA를 전폭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트럼프 정부는 볼턴 보좌관을 한국과 일본에 긴급히 보냈다. 한·일 갈등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4일 서울에서 볼턴 보좌관과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방안 등 양국 간 주요 현안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다음달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담 개최를 계기로 한·일 양자 외교장관 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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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면 중재 앞서 한·일 양자 해결 촉구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갈등에 당장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우선은 당사자 간 해결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일 정상 모두가 원할 경우라는 전제조건을 걸어 중재자 역할 여지를 열어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한·일 양국이 미국엔 중요한 우방국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두 사람을 다 좋아한다며 일본과 한국 사이에 관여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 처지인 만큼 미국이 당장 직접 나서기보다는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대신 양자 해결을 촉구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일 3국 협력을 거론하며 한·일 양국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미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 워싱턴·도쿄=정재영·김청중 특파원, 박현준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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