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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문희철의 졸음쉼터] 무심코 상향등 켰더니 흰 소복 입은 여자가 노려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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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철의 졸음쉼터] 쌍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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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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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이음센터에서 열린 ‘고요 속의 대화’ 체험전시회는 잠시나마 청각장애인이 되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청각장애인은 비록 잘 들리지 않지만 얼굴 표정과 손, 입술을 활용해 의사소통 합니다. 전시회 덕분에 그들이 어떻게 세상과 교감하는지 배워볼 수 있었습니다.

청각장애인처럼 운전자도 어느 정도 제한적으로 소통합니다. 사방에서 달리는 차량의 운전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리는 직접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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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편에서 상향등을 켜고 달리는 차량.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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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차량은 몇 가지 장치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우측 방향지시등은 ‘우측으로 가고 싶어요’라거나, 경적은 ‘조심하세요’와 같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운전자에게 필요한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 중 하나가 상향등(high beam)입니다. 상향등은 먼 곳을 비추기 위해서 사용하는 조명장치입니다. 주로 운전자가 시야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급커브 구간이나 가로등이 없는 국도에서 전방 도로 상황 파악이 어려울 때 사용합니다.

유럽연합(EU) 등에서 상향등은 전통적으로 ‘양보할게요’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횡단보도가 없는 길을 건너려고 길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량이 멈추고 상향등을 살짝 켰다 꺼준다면 ‘차량이 양보할테니 먼저 건너가세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나 위성항법시스템(GPS)이 상용화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아버지 차를 타면 맞은 차선에서 상향등으로 귀띔하던 차량이 생각납니다. ‘조금 더 가면 경찰이 스피드건을 들고 과속 단속을 하고 있으니까 조심해’라는 신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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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자동차의 액티브하이빔컨트롤러. 앞차나 맞은편 차선의 차량을 피해서 상향등을 비춘다. 다른 운전자에게 의도적으로 '눈뽕'을 날리려는 운전자는 싫어할 수 있는 기능이다. [사진 볼보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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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운전자들끼리 유대감을 공유하던 상향등이 요즘 조금 다른 의미로 종종 사용됩니다. ‘비켜!’라는 위협의 의미를 담아 욕설을 날리듯이 상향등을 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향등의 속칭(쌍라이트)이 쌍자음으로 시작하는데다 비속어(썅)와 어감상 유사해서 벌어지는 일인 것 같습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차량의 상향등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경우 운전자가 정상 시력을 되찾을 때까지 평균 3.23초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시속 100㎞로 주행하고 있었다면 거의 100m에 가까운 거리(90m)를 시야가 확보되자 않은 상태에서 질주하게 되는 셈입니다. 보복운전의 일종인 속칭 ‘눈뽕’을 맞은 거죠.

때문에 요즘에는 쌍라이트를 날리는 운전자에게 보복하려고 차량 후방 유리창에 무시무시한 스티커를 붙이는 운전자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뒤차가 상향등을 켜면 갑자기 귀신 형체가 보이는 일종의 형광스티컵니다. 심약한 운전자의 경우 기절초풍해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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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모닝 후면에 부착한 상향등 복수 스티커. [사진 부산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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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차가 길을 가로막는다고 상향등을 자꾸 쏘는 행위와 상향등 보복 스티커를 부착하는 행위는 모두 관련 법령을 위반하는 행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쌍라이트를 한 번 날려주기 전에, 전조등을 두어 번 점멸하면서 정중하게 추월의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앞차 운전자도 세상과 교감하고 싶은데 다만 방법이 서툰건지 모릅니다. 청각장애인이 제한적인 수단으로 교감하는 것처럼요. 운전자의 마음이 서로 연결되는 것. 진정한 커넥티드카(connected car·외부와 통신하며 교류하는 차량) 시대의 전제일지 모릅니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 문희철의 졸음쉼터

※'문희철의 졸음쉼터'는 중앙일보가 연재하는 자동차를 주제로 한 에세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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