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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CEO LOUNGE] 모처럼 웃음 짓는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 테라에 진로(진로이즈백)까지 대박…제2 전성기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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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1950년생/ 1991년 조선맥주 대표이사/ 2001년 하이트맥주 대표이사(회장)/ 2005년 하이트진로 회장(현)


주류 명가의 부활.

요즘 하이트진로의 분위기를 보면 이 같은 문구로 정리할 수 있을 듯싶다.

하이트진로의 기세가 심상찮다. 지난 몇 년간 부진했던 맥주 부문에서 ‘필라이트’와 ‘테라’로 연타석 홈런을 친 데 이어 최근 내놓은 소주 ‘진로(진로이즈백)’도 대박 조짐이 보인다.

지난 3월 선보인 테라는 100일 만에 1억병 판매를 돌파했다. 진로는 처음 목표 연간 판매량(1000만병)을 불과 2개월 만에 달성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부터 이런저런 구설수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69)은 여러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으며 올해는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 경영진이 재판을 받고 있다. 수입맥주의 반격과 소주 시장 축소로 실적 또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잇따른 신제품 흥행으로 주류 명가 명성을 조금씩 되찾는 모습이다. 덩달아 하이트진로를 30년 가까이 이끌고 있는 박문덕 회장 역시 주목받는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30년 맥주만 올인…테라로 정점

故 박경복 하이트진로 명예회장 둘째 아들인 박문덕 회장은 1991년 3월 조선맥주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박 회장은 여러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하이트진로가 국내 주류업계 1위 기업이 되는 과정에서 두 가지 큰 결단을 내렸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당시 조선맥주가 내놓은 브랜드 ‘크라운맥주’는 동양맥주(OB맥주의 전신)에 이어 맥주업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점유율 자체는 20%대 수준으로 낮았다. 왜 크라운맥주가 팔리지 않을까 고민했던 박 회장은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한 슈퍼마켓을 빌려 두 맥주 상표를 떼고 맛을 비교하는 실험. 선호도는 50 대 50. 상표만 떼고 보면 두 맥주맛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표를 붙이고 실험한 결과, 크라운맥주 선호도는 10%로 뚝 떨어졌다. 맛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브랜드’라는 사실을 깨달은 박 회장은 새로운 브랜드 발굴에 나섰다.

회사 근처 여관을 빌려 1년 이상 합숙하며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맥주가 바로 ‘하이트’다. 1993년 5월 세상에 나온 하이트는 그야말로 맥주 시장에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1996년 하이트는 처음으로 동양맥주를 제치고 맥주업계 1위에 등극한다. 하이트 돌풍 이후 박 회장은 회사 사명을 조선맥주에서 아예 하이트맥주로 바꾼다.

박 회장이 내린 두 번째 결단은 바로 소주 시장 진출이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소주 1위 기업인 ‘진로’가 매물로 나왔을 때 하이트가 인수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03년부터 박 회장은 하이트 때처럼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며 진로 인수 작업에 나섰다. 당시 맥주 시장은 OB맥주가 ‘카스맥주’를 손에 넣은 후 새롭게 재편되고 있었다. 박 회장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진로 입찰에 참가한 기업은 대략 10곳. CJ나 롯데와 같은 대기업도 포함됐다. 경쟁 업체 중 하이트는 규모가 가장 작았지만 다른 기업과 달리 주류산업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치밀한 전략과 과감한 베팅 끝에 하이트는 진로를 인수하면서 소주 시장 진출에 성공한다.

매경이코노미

▶OB맥주의 추격에

▷테라·필라이트로 반격

소주와 맥주 모두 50% 점유율을 넘어서며 국내 주류업계 1인자로 등극한 하이트진로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카스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2010년대 들어 맥주 1위 자리를 OB맥주에 뺏긴다. 이후 카스는 60% 전후의 점유율로 10년 가까이 맥주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반면 하이트진로의 ‘하이트’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수입맥주 공세가 계속되는 와중에 롯데주류가 내놓은 ‘클라우드’ 같은 새로운 경쟁자가 하이트 점유율을 야금야금 잠식했다. 그나마 소주 시장에서 선방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박 회장은 지속적으로 ‘맥주 사업의 체질 개선’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승부수를 던졌다. 맥주 사업 체질 개선을 위해 큰 틀에서 두 가지 전략을 마련했다. 우선 값싼 수입맥주를 견제하기 위해 발포주인 ‘필라이트’를 선보였다. 필라이트는 국내 맥주 시장에 ‘발포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며 나름 ‘중박’을 쳤다. 비장의 무기는 따로 있었다. 5년 전부터 개발을 진행했던 테라다.

‘경쟁사 제품과 모든 면에서 차별화해야 한다’.

테라 개발 당시 박 회장과 하이트진로 경영진이 제품 개발 담당자들에게 내렸던 주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 콘셉트를 잡는 일. 어떤 맥주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몇 개월간 진행했다. 논의 끝에 ‘많은 사람 취향을 만족시키는 레귤러 맥주’를 만들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제품 콘셉트가 정해진 후 R&D 담당 직원들은 세계 곳곳을 돌며 원료를 찾아 나섰다. 지구촌을 누빈 끝에 호주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맥아를 주원료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필라이트를 테라보다 2년 앞서 선보인 것도 모두 테라를 위한 전략적 선택의 일환이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테라 개발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산 브랜드 입지를 다지고 테라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필라이트를 선보였다”고 설명한다.

야심 차게 준비한 테라는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이트를 처음 출시했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판매량이 늘면서 하이트진로를 대표하는 맥주로 자리 잡았다.

일각에서는 테라로 인해 기존 하이트나 맥스 등 주력 맥주 제품 판매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기우였다. 테라 이후 하이트진로 맥주 전체 판매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6월 하이트진로 맥주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5%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테라가 하이트진로의 맥주 사업 체질 개선을 주도했다면 ‘진로’는 그간 침체됐던 소주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를 만든 제품이다. 자발적인 인증샷 열풍과 함께 입소문을 타며 빠르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중이다. 30~40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하고 새로운 소주라는 제품으로 인식된다.

▶여러 과제도 산더미

▷재판 결과에 따라 승계 빨간불?

올해 대박 난 두 제품으로 하이트진로는 주류 명가의 자존심을 완벽히 회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박 회장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찮다. 사업적으로는 테라 열풍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이끌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테라가 카스 대항마로 완전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영업망 확보가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테라를 접하기 어려운 음식점이나 주점이 많다.

서울에서 주류 소비가 많은 강남 지역에서 테라 입점 비율은 약 50% 정도. 하이트진로 측은 “다양한 광고와 프로모션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라며 “올해 안에 국내 맥주 시장에서 반드시 두 자릿수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업 외적인 변수도 있다. 맥주캔 통행세 논란으로 현재 일감 몰아주기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10년간 조직적으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에 따라 검찰 수사를 받았다. 박 회장 장남인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서영이앤티에 부당 지원을 한 혐의다. 지난 5월 첫 공판에서 검찰 측과 하이트진로 변호인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모처럼 한 방 터뜨린 박 회장이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 하이트진로의 앞날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향후 승계 작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테라와 진로 등으로 주류 명가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하이트진로와 박 회장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8호 (2019.07.24~2019.07.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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