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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학생들이 공간 혁신 참여하니.. 학교폭력도 사라지고 진로·민주 교육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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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실제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 모형을 만들고 있는 마지초등학교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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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게임만 했는데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기술도 배웠어요. 게임과 만들기 중에 선택하라면 만들기를 선택할래요.”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가 빵빵해졌어요. 직접 만든 공간에서 수업을 하니 더욱 재미있어요.”

광주 마지초·광산중·첨단고는 전국에서 공간혁신으로 가장 '핫(Hot)'한 학교다. 달라진 공간을 눈으로 보고 학생 발표를 들으려 전국에서 교사사 찾아온다. 대단한 건물이 있는 것도, 화려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명세를 타는 이유는 바로 '학생'이었다. 학생이 참여해 직접 공간을 만들고, 이러한 과정 자체가 교육과정이 된 학교다. 게임·스마트폰에만 몰입하던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만들기를 하면서 놀고, 실내건축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몰랐던 자신의 적성을 찾기도 했다.

학생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면 학생들이 직접 설명한다. 수백 명이 모인 교사 앞에서도 내가 만든 공간을 자랑하고 소개하는데 거침이 없다.

마지초등학교는 학교 복도 곳곳이 학생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 공간으로 채워지는 중이다. 2층 복도 구석에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미끄럼을 탈 수 있는 쉼터가 있다. 한쪽 복도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레고판이 있다. 두 건물을 이어주는 연결통로에는 책상을 개조해 만든 이동식 탁구대가 놓여있다. 마음껏 낙서할 수 있는 유리창엔 친구를 격려하는 문구가 가득하다. 모든 공간은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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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공작소 한쪽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는 공작 도구들이 걸려있다. 정리를 위한 타공판 역시 학생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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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엉뚱공작소에 올라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학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물건이 이 공간에서 제작됐다. 올해 졸업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들이 지난해 만든 공간이다. 한 학생이 2주 동안 일일이 구멍을 뚫었다는 타공판에는 소형 망치부터 글루건 등 다양한 도구가 가득 걸려있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학생들은 엉뚱공작소로 달려가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기도, 도면을 그려보기도 한다. 어린이날에는 엉뚱 카페를 열어 학생들이 와플을 만들기도 했다. 이 학교는 언제부터인가 '학교폭력'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

2층 레고판을 함께 만들었다는 6학년 주경준 학생은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고 했다.

같은 학년 김윤민 학생과 노희진 학생은 방과 후에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던 습관이 없어졌다. 친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너무 즐겁다. 무서워서 못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초 엉뚱공작소는 다른 학교 학생에게도 '희망'을 주는 공간이다. 김보석 광산중(3학년) 학생은 학교 안에서 친구들과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광산중은 몇 년 전만해도 30학급이 넘는 대규모 학교였으나 이제는 11학급으로 줄어 빈 공간이 많아졌다. 건물을 잇던 연결통로에 수제 장기판을 놓고 싶어 친구과 엉뚱공작소를 찾았다. 마지초 김황 교사는 찾아온 학생에게 설계하는 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김황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 '갓황'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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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공모전에서 학생들이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는 모습. 제공=첨단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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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고 학생은 공간혁신을 통해 진로와 진학 고민까지 풀었다. 첨단고의 열린공간 '라온' 역시 학생들이 만들었다. 때로는 쉬기도 하고, 때로는 동아리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한다. 토론식 수업이나 시청각 자료가 많은 수업 장소로도 활용된다.

라온은 오세정 교사의 도전으로 시작됐다. 전교생 설문조사, 디자인 공모행사를 펼쳤다.

공모행사에서는 복층으로 예쁘게 만든 아이디어가 1등을 차지했으나, 건축가와 예술가 등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전환했다.

참여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고 체화하게 됐다.

실내디자인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던 학생이 경영으로 진로를 바꾸기도 했다. 3D 프린팅 동아리, 미술 동아리와 협력하면서 '협업'의 소중함도 느꼈다. 한창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데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생기부와 자기소개서에 쓸 거리가 많아져 뿌듯하다고 했다. 박재희 학생은 “스스로 만든 공간이라 그런지 더 소중하다”면서 “예술가를 만나서 그들이 만든 공간을 찾아가고, 시야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광주=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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