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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이슈논쟁] ‘자회사 상용직’ 신종 비정규직 양산한 정부 / 윤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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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


올여름은 가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뜨거운 여름’이라 할 만하다. 자회사로의 전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집단해고를 당한 1500여명의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고, 지난 3일부터 사흘간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10만여명이 사상 최초의 공동파업을 전개하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이 가졌던 기대와 비교해 보면, 꼭 2년 만에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에 앞장선 이들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은 이들의 투쟁을 ‘촛불 청구서’라며 비난하지만, 사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대선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이후 아이엠에프가 요구한 것보다 더 가혹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펼쳤다. 공공부문의 인력 감축과 민영화, 민간위탁이 전방위적으로 강제되어 1998년부터 2000년까지에만 중앙정부 정원의 13.8%, 지방자치단체 정원의 16.8%, 공기업 정원의 25%가 감축되었다. 그런데 공무원 혹은 정규직 ‘정원’이 감축되었을 뿐, 그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은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26일, 당시 근로복지공단비정규노조 광주본부장이었던 이용석 열사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노동부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하며 분신한 사건은, 2004년 5월 정부가 최초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후 정부가 발표한 2006년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원형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상시·지속적 업무에 일정 기간 근무한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정규직 대비 일정 수준까지 개선하며, 합리적 외주화 원칙을 정립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당시 국회에 계류 중이었던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통과를 앞두고 ‘무기계약직’이라는 신종 비정규직 형태를 만들어냈다. 당시까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맺었지만 노동조건은 여전히 차별적인 무기계약직이라는 신종 고용 형태를 권장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한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킨다고 하지만, 전환 대상인지 여부는 기관별로 판단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보니 기관별로 예산 제약 등을 이유로 임의로 전환 대상을 축소하거나 전환에서 탈락한 비정규직들이 계약해지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중 일부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어도 그 일자리는 또 다른 비정규직으로 채워지도록 허용하여, 공공부문에서 정규직 고용의 원칙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대책에는 ‘문재인노믹스’라 부를 만한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존재한다. 노무현 정부가 ‘무기계약직’이라는 신종 비정규직을 만들어냈듯이, 문재인 정부는 ‘자회사 상용직’이라는 신종 간접고용을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한국도로공사, 한국잡월드 등 비정규직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회사 전환이 이루어졌고, 현재 공공기관 간접고용 노동자의 31% 이상이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되었거나 전환이 확정되었다. 기존의 민간 용역업체에서 소유구조만 바뀌었을 뿐 그 기능은 동일한 자회사로의 전환을 강제하는 데에서, 노동자들을 고용 형태별로 구획 짓겠다는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둘째, 고용 형태별로만이 아니라 직무별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차별화하는 직무급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10만여명에 대한 ‘표준임금체계(안)’을 만들었다. 5개 직무등급 및 6개 승급단계로 구성되는데, 가장 높은 등급의 노동자가 15년간 일해서 최고 단계로 승급할 때 받을 수 있는 최대임금은 최저임금의 142%다. 김대중 정부가 ‘비핵심업무’의 외주화를 표방하며 간접고용을 강제하였듯이, 노무현 정부가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 노동조건이 정당화되는 무기계약직을 만들어냈듯이, 문재인 정부는 특정 직무에 대한 가치절하를 통해 차별을 합리화하고 있다.

셋째, 아마도 가장 비열한 정책이라 생각하는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일자리에 경쟁채용을 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자 간 경쟁과 반목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까지 차별에 시달린 비정규직들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정규직화가 아니라, 노동자들 간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지는 시혜가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과거를 답습하는 한 실패할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상시·지속적 일자리에 정규직 사용을 원칙으로 세우고, 그런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들의 고용 안정과 차별 해소를 위해 지속가능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노동조합과의 성실한 교섭을 통해 조직적 동의를 개혁의 동력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슈논쟁] 기로에 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주목받았던 노동정책 가운데 하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책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비정규직이 많은 공공부문 현장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2년여가 지난 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자회사 전환 방식을 통한 정규직 전환 대책이 시행되는 사업장에서는 또다른 ‘차별의 합리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대책의 성과와 한계, 향후 필요한 정책 방향 등을 주제로,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과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의 견해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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