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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사설] 양승태 석방, ‘공정 재판’ 흔들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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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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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22일 직권보석으로 풀어줬다. 구속 만기 6개월 안에 재판을 끝내기 어렵게 되자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하기로 한 것이다. 불구속 재판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이고 법에 따른 당연한 조처이긴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사법농단 사건의 피고인이 재판 농단을 부려 따낸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재판이 앞으로도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는 이날 재판 관련자 접촉 금지 등의 조건을 붙여 보석을 허가했다. ‘주거’를 제한했으나 집 밖을 나서지 말라는 취지는 아니어서 김경수 경남지사처럼 외부 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다. 재판부 허가만 받으면 3일 이상의 여행이나 출국도 가능하다.

우려되는 것은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구속 상태에서도 파행을 겪었는데 불구속 재판이 과연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양 전 대법원장의 태도가 의문을 더욱 부추긴다. 그는 검찰 수사 자체를 모욕하는 듯한 언행을 거침없이 해왔다. 보석심문 절차에선 ‘조물주처럼 공소장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법정에 처음 나와서는 ‘80명이 넘는 검사가 공소장을 창작했다’며 한편의 소설로 깎아내렸다. 군사정권 시절 법정에서 검찰을 ‘정권의 개’로 질타하던 재야인사 이래 처음 보는 신랄한 언사다.

그가 검찰 쪽 증거에 시비를 거는 바람에 준비 절차에만 4개월이 걸렸다.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모조리 부인하는 통에 법정에 서야 하는 증인만 200명이 넘는다. 전직 대법관 등 다른 법원고위직 피고인들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 법정의 풍경과는 너무 다르다.

앞으로 일반 사건 피고인들도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일체 부인해 증인들을 모두 법정에 부를 수 있다면 공판중심주의의 커다란 진전이다. 법원이 그럴 각오가 돼 있다면 이번 사건은 망외의 큰 소득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없다면 자칫 재판 농단을 넘어 특혜 재판이 될 수도 있다. 재판부의 적절한 제동이 필요해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 농단으로 사법부의 신뢰를 결정적으로 실추시켰다. 온 국민이 농단 문건을 보고 재판 거래와 법관 사찰의 실체를 알게 됐다. 그런데도 참회와 반성은커녕 여전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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