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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속담말ㅆ·미]씨도둑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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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 집 자식이 훌륭하다 소문 자자할 때 사람들이 그럽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뉘 집 자식이 망나니짓을 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럽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같은 말을 다르게 쓸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 부모의 행실과 집안의 내력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씨도둑은 못한다’지요.

농부는 수확할 때 잘 여물고 실한 씨앗들만 골라 다음 파종 때 쓰려고 따로 갈무리합니다. 열심히 잘 키운 작물은 씨앗도 다르고 그 씨앗 심어 난 떡잎 역시 남다릅니다. 부실하게 키운 작물은 응당 그 씨앗이 하잘것없고 싹수 또한 노랗지요. 좋은 종자는 누가 훔쳐갈세라 종자 자루를 베고 잘 만큼 애지중지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훔쳐갈 수 없는 종자가 있습니다. 그건 한 집안이 면면히 이어온 올곧은 가풍과 내력이란 씨앗입니다. 농부가 몇 십 년에 걸쳐 옹골진 씨앗만 고르고 고르듯, 종가는 아니더라도 내실이 실팍한 집안은 대대로 실한 씨앗만 내는 번듯한 종가(種家)가 됩니다. 태어나보니 그런 집안이고 자라다보니 몸에 배는 게 그런 반듯함입니다.

깍두기집안에서 자기네도 잘되고 싶어 ‘이런 자녀가 성공한다, 내 아이 이렇게 키워라’, 이런저런 롤모델에 벤치마킹 합니다. 그래봐야 허수아비의 아들은 결국 ‘허수’일 뿐입니다. 악다구니로 부부싸움 하고 ‘얘는 누굴 닮아 이 모양이냐’는 집안에선 실한 씨를 얻을 수 없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최고의 가정교육은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도 배운 집 자식이나 가능하겠지요. 인사드리러 갔더니 시어머니자리는 종종거리고 남편자리와 시아버지자리는 받아먹기만 한다면, 또 “모르면 좀 가만있어요” 장인자리가 일상인 듯 면박당한다면 어서 빨리 도망치라는 말이 우스개만은 아닐 겁니다.

어디서 도둑질해 온 게 아니라면 예비 배우자도 그 집구석의 그런 씨앗일 테니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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