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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학교의 안과 밖]질문이 있는 교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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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근무하면서 갖게 된 의문 중 하나는 ‘왜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거나 발표를 더 자주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1학년 초에는 곧잘 발표하다가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질문이 있는 곳에 침묵이 따르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경향신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정서적 안전’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긍정 심리학에 기반을 둔 사회 정서 학습이론에서도 아이들의 정서적 안전이 학습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고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서도 안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인정과 존경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배움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배움이 일어나는 안전한 공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학생들 사이에 형성된 우정과 신뢰, 모두가 동의하는 공통의 규칙 등도 필요하지만 교사의 수용적 태도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험한 순간이 있었다.

몇 해 전 ‘가르치지 않고 배우는 교육,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교육, 활동을 통해 갈등에 대한 평화적 전환과 비폭력적 감수성을 키운다’는 소개에 이끌려 청소년 평화지킴이(HIPP: Help Increase Peace Program)라는 2박3일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재미있게 활동하고 함께 둘러앉아 진행자의 열린 질문에 따라 자신의 경험과 새롭게 발견한 점들에 대해 성찰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워크숍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깊이 있는 성찰과 서로 그 과정에 몰입하는 경험을 했는데 연수가 끝나갈 즈음에 ‘아!’ 하는 지점이 있었다. ‘왜 이렇게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자유롭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자기 발견적 배움으로 가져갈 수 있는가?’ 했더니 진행자가 질문하고 나서 답을 재촉하거나, 참가자들이 나눈 성찰에 첨삭을 하며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실에서 교사가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다섯 가지를 기대했는데 학생이 세 가지를 발표하면 나머지 두 가지를 교사가 덧붙일 때 얼어붙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는 그 순간 내 답은 60점짜리구나, 라는 실망감으로 움츠려 들게 된다. 질의응답 시간에 물어보았다. ‘각 활동마다 어떤 성찰이 나오기를 기대하는지’ ‘목표가 있는지’라고.

방향은 있지만 정해진 어떤 답을 예상하지는 않는다고 진행자는답했다. 진행자(교사)의 수용적 태도가 무엇인지를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교사가 되어 각종 교사연수를 다니면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체험이었다.

사람은 자신 안에 없는 것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랑을 받아 봐야 사랑을 줄 수 있고 공감을 받아 봐야 공감해줄 수 있듯이 배움을 촉진하는 수용적 태도가 무엇인지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비춰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질문은 하지만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았고, 은연중 정답을 기대하는 태도로 학생들의 망설임을 촉진했었던 것이다.

즐거운 배움이 일어나는 교실은 학생들이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정답일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넘어설 때 비로소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선물이다.

손연일 |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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