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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이지누 칼럼]일본의 마애불 그리고 열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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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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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11일은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은 날이다. 1년여 입원 생활 끝에 큰 수술을 한 그날 이후 두어 달을 병원에 더 머물러야 했다. 그러고 2년여 동안 걷고 뜀박질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재활운동이 이어졌다. 몸과 생각을 추스른 후 향한 곳은 중국과 일본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뻔질나게 두 나라를 드나들었다. 우리나라에 더 이상 다닐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다닌 것만이라도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정리라는 것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전통문화 중 무엇이 같고 다른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세 나라가 공통으로 지닌 것 중 가장 먼저 대상으로 삼은 것은 마애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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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애불은 대부분 답사를 마친 상태였으므로 중국 쪽은 석굴불이 주류를 이루는 실크로드가 아닌 ‘신의 땅’이라 불리는 티베트의 라싸에서 시작했다. 나름대로 정한 석굴불과 마애불의 기준에 따라 충실한 답사를 하며 우리나라 서해안과 마주 보는 장쑤성의 롄윈강(連雲港) 공망산마애석각(孔望山摩崖石刻)까지 무사히 다다랐다.

사실 유교와 도교 그리고 불교조각이 망라된 중국 최초의 마애석각이라고 하는 그곳까지 가는 길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시골이어서 찾아가기도 어려웠으며 현지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어눌하게 물어도 자기 일처럼 친절하게 알려주었으며 심지어 오토바이에 나를 실어 현장까지 데리고 갔다가 다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기도 하였다.

더러 혼자 외진 곳까지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집으로 초대를 받기도 했다. 차를 한 잔 얻어 마시는 정도면 다행이지만 식사자리라도 마련되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말했듯 나는 큰 수술로 인하여 감염에 취약할뿐더러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술과 담배를 입에 댈 수도 없을뿐더러 그 이유를 잘 설명할 만큼 중국어에 능통하지도 못하다. 그러니 다반사로 권하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까닭을 아예 종이에 프린트해 가지고 다녔다. 구겨지지 않도록 코팅을 하여 배낭에 넣어 뒀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보여주면서 미안한 표정을 짓는 정도가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일본은 중국보다 더 자주 찾았는데 그들만의 독자적인 전통문화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앗아간 문화재들도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오키나와로부터 홋카이도까지 발길 닿지 않은 진진포포나 공항 그리고 기차역이 없을 정도이다. 일본에서도 마애불을 찾아다녔었는데 일본의 마애불은 80% 이상이 규슈지방에 분포되어있다. 또 규슈지방에서도 오이타현에 대부분이 모여 있다. 오이타현 우스키시 후카타에는 우스키석불로도 불리는 마애불상군이 있는데 같은 장소에 ‘후루조노 석불군’, ‘산노잔 석불군’, ‘호키석불 제1군’, ‘호키석불 제2군’처럼 네 곳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 새겨진 마애불 60여구 중 59구가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마애불로는 유일하다. 조성된 시기는 대략 헤이안시대(794~1185) 후기부터 가마쿠라시대(1185~1333)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채색을 한 마애불들이 많다.

이러한 마애불은 긴키지방의 나라시에도 제법 있다. 규슈지방의 마애불들보다 조성 연대가 위로 올라가는 나라시 외곽 야타야마의 폐사가 된 다키데라를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는 현존하는 일본의 마애불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라고 전하는 나라시대(710~794) 전기에 조성되었다는 마애불이 있다. 큰 바위에 작은 사각형 감실 다섯 개를 파고 그 안에 손바닥만 한 작은 불상과 보살상을 새긴 형태이다.

그러나 그곳은 단박에 찾을 수가 없었다. 두 차례나 근처를 헤맸지만 실패하고 세 번째 만에 찾았는데 고약한 경험과 함께였다. 고리야마역에서 택시를 타고 산으로 들어가 마애불 근처의 사찰로 갔으나 하필 아무도 없었다. 12월 초였지만 단풍이 곱게 물든 산사의 계단에 하릴없이 앉았는데 마침 노인 둘이 등산을 가는지 사찰로 들어섰다. 옳다구나 싶어서 태블릿 속의 사진을 보여 주며 그곳을 아는지 물었다. 세련되지 못한 발음 때문인지 노인은 되레 나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스스럼없이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면전에서 옆에 서 있던 동행과 귀엣말을 하는데 가관이었다. 내용은 대략 저 사람은 한국인이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장소를 알려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말소리만 조금 줄였을 뿐 대놓고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당연히 나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고 입가에는 어이없는 웃음이 흘렀다.

마침 그때 산 위로부터 산악자전거를 탄 40대 남성이 한 명 내려왔고 그에게 마애불의 위치를 다시 물었다. 남자가 위치를 알려 줄 듯하자 노인들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가 좀 전 그들끼리 나누던 귀엣말을 전했다. 그러자 남자가 나처럼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노인들을 바라본 후 나를 향해 영어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다짜고짜 영어로 마애불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다행히 노인들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고 남자는 나를 보고 씩 웃고는 쏜살같이 산을 내려갔다. 물론 나도 노인들을 본체만체한 후 발길을 돌렸었다.

그렇게 6년 동안 일본을 드나들며 겪은 일본은 여전히 뿌리 깊은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열등감은 섬이라는 자연 지리적 조건에서 생기는 것이다. 대륙을 질투하지만 지향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겨우 대륙의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반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대륙의 일부이고 일본은 섬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열등감을 극복하고 감추려고 그들은 번번이 대륙을 탐하면서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들이 대륙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한 적이 있던가. 아니 없다. 잠시 이겼을지언정 끝내 이긴 전쟁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꿈꾼다. 그 미래는 정제되지 못한 욕심덩어리다. 스스로 허방다리를 파놓은 것을 잊고 그곳을 딛는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어찌 이토록 어리석단 말인가.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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