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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보호와 처벌 사이 : 소년사법 보고서](1)‘우범소년’이란 이유만으로…죄짓지 않았는데도 법정에 세워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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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기준 없이 남용되는 ‘통고’ 제도

우범소년에 대한 통고, 주로 보호자 또는 학교·사회복리시설의 장에 의해 이뤄져

습관 교정 등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들, 너무 쉽게 ‘문제아’로 낙인찍혀

법원의 공격적인 홍보에 보호시설들의 ‘폭탄 돌리기’ 빈번…인권적 측면서 악용 소지

경향신문

2012년 10월 영화 <범죄소년>을 관람하고 있는 소년원생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이 영화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소년이 범죄에 연루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의 소년사법은 재교육보다는 징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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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던 10대 청소년 ㄱ군은 소년분류심사원에 끌려갔다. 소년분류심사원은 만 19세 미만 아동이 소년부 재판에 넘겨지기 전 머무는 곳이다. 일종의 ‘구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ㄱ군이 소년분류심사원에 간 건 그가 머물던 복지시설 원장이 법원에 ‘통고’했기 때문이다.

ㄱ군이 생활하던 아동복지시설은 생활규칙이 엄격해 외출이 철저히 통제된 곳이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벌점이 쌓인다. 벌점이 쌓이면 일주일에 한두 번 겨우 있는 외출도 못 나간다. 외출 때 교사와 동행해야 하지만, 매일 시설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ㄱ군은 벌점 때문에 외출을 못 나가게 되자 화가 나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트렸다. 원장이 ㄱ군을 통고한 이유였다. 눈칫밥을 먹고 자란 시설 아동들은 언제든 통고를 당할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ㄱ군도 통고를 짐작하고 몰래 시설을 빠져나갔다. 결국 붙잡혀 가출행위가 추가됐다.

■ 죄짓지 않아도 재판받는 ‘우범소년’

ㄱ군은 “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갈 때 왜 가는지 아무도 설명을 안 해줬다”고 했다. ㄱ군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다.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가는데 누군가 그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안 했다는 의미다. ㄱ군은 “소년분류심사원의 조사관들도 내가 왜 들어왔는지 모른다. 다른 아이들은 폭력·상해 이런 식으로 이유가 뜨는데 나는 ‘기타 사유’로 분류됐다”고 했다.

ㄱ군의 사례는 지난해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아동·청소년 인권보장을 위한 소년사법제도 개선 연구’ 자료에 나온다. 인권위 의뢰를 받은 사단법인 두루, 법무법인 지평, 국제아동인권센터 등의 연구원들이 인권위 의뢰를 받아 면담한 소년보호사건 경험자의 이야기다. 아동들은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아도 법정에 서거나 소년원에 갇히며 자유가 박탈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금태섭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확인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호자 등에 의한 통고로 접수된 소년보호사건은 모두 407건이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233건의 통고가 이뤄졌는데, 이는 5년 전인 2014년 한 해 동안 접수된 통고(195건)보다 많은 수치다.

죄를 짓지 않아도 통고되면 법정에 선다는 게 문제다. ㄱ군은 형법을 어긴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우범소년’에 해당돼 통고됐다. 통고는 소년보호사건의 대상이 되는 범죄·촉법·우범 소년을 ‘보호자 또는 학교·사회복리시설·보호관찰소의 장이 관할 소년부에 통고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근거로 이뤄진다.

소년법 제4조는 만 19세 미만 아동 중 죄를 범한 소년(범죄소년),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14세 미만의 소년(촉법소년), ‘앞으로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 소년’인 우범소년이 소년보호사건의 대상이 된다고 정의한다. 수사기관 수사로 적발된 범죄·촉법 소년은 대부분 법원으로 ‘송치’하는 방식으로 소년재판을 받는다. 우범소년은 실제로 위법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호자 등의 통고로 재판을 받는다.

통고된 우범소년은 대부분 다른 범죄소년과 같은 보호관찰, 보호시설 위탁,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지난해 407건의 통고 중 실제 보호처분이 내려진 건 310건에 달했다. ‘통고 제도에 따른 보호처분별 현황’을 보면, 지난해 아동 15명이 통고 제도로 6~12개월 동안 소년원에 송치되는 9호(단기)·10호(장기) 처분을 받았다. 통고에 따라 소년원에 송치된 경우는 2014년 14명, 2015년 13명, 2016년 19명, 2017년 23명 등 꾸준히 늘어났다.

한국에서 통고 제도는 객관적인 기준 없이 죄를 짓지 않은 아동을 ‘우범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정에 세우고 처벌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제정된 법에 의하지 아니하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원칙인 죄형법주의에 맞지 않고, 아동을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소년보호처분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제도다.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국장은 “실수를 바로잡거나 습관을 고치는 식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아동들이 통고 제도로 너무 쉽게 문제아로 낙인찍힌다”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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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 문제 ‘신속하고 간편하게’ 해결하라는 법원

2017년 3만4110건의 소년보호사건 중 통고는 342건이었다. 전체 소년보호사건 중 접수 비율이 가장 적다. 10년 전인 2007년 3만7910건의 소년보호사건 중 통고는 단 5건밖에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68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소년보호사건의 전체 수치는 줄었지만 유독 통고 건수만 증가한 것이다.

법원 등에서 통고 제도를 활발하게 홍보한다. 법원은 홈페이지에 ‘신속하고 간편하게 문제해결’ ‘문제해결 부담 경감’ ‘전문가의 효과적인 도움’이라고 통고 제도를 소개한다. 정 국장은 “아동 문제는 신속하게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또한 정확해야 한다”며 “한 아이의 일생이 걸린 문제를 행정편의주의적인 태도로 간편하게 처리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통고 제도는 특히 보호자가 없는 시설 거주 아동들에게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아동복지시설 관계자들이 보호하기 어려운 아동들을 떼어놓으려고 통고를 활용한다. 정 국장은 “보호자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 객관적으로 통고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ㄱ군 등 소년사법 경험 아동들과 면담한 전미아 국제아동인권센터 연구원은 “아동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아동복지시설들이 관리하기 힘든 아동을 통고 제도를 이용해 밖으로 내보내는 이른바 ‘폭탄 돌리기’가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했다. 전 연구원은 “법원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시설들에 아동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돌봐주기 힘들면 통고 제도를 이용하라는 ‘달콤한’ 제안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년보호사건에서는 보호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징벌로 느껴지는 현실적인 간극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현재 통고 제도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영국같이 집중적인 가정위탁 프로그램이나 후견인 제도 등 다른 제도를 도입하기 어려워 폐지하기는 힘들다”며 “소년보호사건을 형사법적으로 접근하는 상황에서 아동에게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지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범소년과 통고 제도는 인권 측면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의 소년법은 일본과 미국의 영향을 받았는데, 미국에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소년을 법원에 보내는 게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며 1970년대부터 우범소년 통고 제도를 폐지했다”면서 “복지적 관점에서 종합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소년전문법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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