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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신세돈의 이코노믹스] 엔저 앞세운 아베노믹스, 결국 한국 수출을 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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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급격히 줄어들면 수출도 감소

수입 감소는 경제 말라간다는 증거

구조개혁 부진해 침체 가속화하고

원화가치 올린 엔저에 직격탄 맞아



‘불황의 전조’ 수입 감소의 배경은

중앙일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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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수입 감소세가 심상치 않다. 1분기에는 지난해보다 6.8% 감소했다. 중간재·소비재부터 연료·곡류·자본재까지 전 품목의 수입이 쪼그라들었다. 올해 들어 한국이 세계 10대 수출국 중 수출 감소 1위를 기록한 것과 무관치 않은 현상이다. 수입 감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흑자를 키우는 일이니 오히려 반겨야 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만 봐도 알 수 있듯 한국 경제는 수입을 하지 못하면 생산 차질을 빚고 결국 질식하게 된다. 더구나 우리는 전체 수입의 13%만 소비재다. 나머지 대부분은 자본재(14%)나 중간재(48%) 혹은 연료·곡류와 같은 1차 산품(24%)이다. 따라서 한국은 경제 활동이 활발할수록 수입이 늘어나고 반대로 경제가 침체할수록 수입은 줄어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은 경제가 말라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지난 1980년 이후 지금까지 40년의 수입통계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뒷받침할 몇 가지 팩트가 드러난다. 첫째, 수입 감소는 항상 경제가 극도로 어려울 때 나타났다. 82년 중남미 외채위기 때 수입이 7.1% 감소했고, 97년 외환위기 때 27% 감소했다. 2001년 IT 버블붕괴 때도 12% 줄어들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27% 이상 감소했다. 2012년 유럽재정 위기 때나 2013년 이후 아베노믹스 직후 엔저(低)가 심할 때도 수입은 급감했다. 결국 수입의 감소는 항상 경제위기와 연결되기 쉽다는 얘기다.

올해 1분기 전 품목 동시 감소

둘째, 수입 감소가 한 분기에만 잠깐 일어난 적은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짧게는 3분기, 길게는 8분기에 걸쳐 수입 감소가 연속돼 나타났다. 외환위기 때는 6분기, IT 버블 붕괴 때와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때는 5분기 연속 수입이 줄어들었다. 수입 감소가 가장 길게 나타났던 것은 2014년 4분기 이후 2016년 1분기까지 8분기 연속 감소다. 이런 패턴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수입 감소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셋째, 중간재, 1차 산품, 소비재, 자본재 할 것 없이 전 품목의 수입이 ‘동시 감소’한 예는 지난 40여 년 동안 두 번밖에 없었다. 98년 외환위기 때와 2009년 금융위기 때 그랬다. 2001년 IT 버블 붕괴 때도 총수입은 감소했지만, 소비재 수입은 12.4%나 증가했고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때도 총수입은 감소했지만, 소비재와 1차 산품의 수입은 증가했다. 웬만큼 경제 충격이 크더라도 소비재 수입은 감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올해 1분기 전 품목 수입 감소는 현재 경제상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넷째, 수입이 ‘감소’하기 시작한 시점은 올해 1분기이지만 ‘수입증가율’이 둔화하기 시작한 시점은 대부분 2017년이었다. 수입증가율이 꺾인 시점은 1차 산품은 2017년 1분기, 자본재는 2017년 2분기, 중간재는 2017년 1~3분기였고 소비재 수입증가세만 조금 늦은 지난해 1분기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반도체 특수가 꺾이기 시작한 2017년 중반 무렵과 시점이 일치한다. 결국 2017년 1분기 혹은 2분기부터 자본재 수입, 1차 산품 수입 및 중간재 수입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해 자본재는 지난해 2분기부터 감소세로 돌아섰고 1차 산품과 중간재와 소비재마저 조금 늦은 올해 1분기부터 감소세로 진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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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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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최근 전 품목의 수입이 감소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외환위기 때나 금융위기에 견줄만한 세계적인 외부 충격은 없었다. 세계 경제나 세계무역증가율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지난해 미·중 간 무역 분쟁이 본격화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부터 자본재나 중간재의 수입증가율은 이미 꺾이기 시작했으므로 모든 것을 미·중 무역 분쟁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16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특수를 빼고 보면 올해 1분기 수입 감소는 2014년 4분기부터 시작돼 2016년 1분기까지 이어진 8분기 수입 감소와 그대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2017년 반도체 특수 때문에 2014년부터 장기간 계속된 수출 부진과 동반 수입 부진이 잠시 가려졌을 뿐 지금의 수입 감소는 2014년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구미·창원·거제·울산 등 대한민국 제조업 기지의 수출이 전반적으로 부진해지기 시작한 2014년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도체 특수 끝나자 현실 직면

그렇다면 2014년을 전후해 한국의 수입을 감소시킨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구조개혁 지연에 따른 경쟁력 약화를 꼽을 수 있다. 규제 개선과 노동개혁을 미룬 탓이다. 이와 함께 일본 아베노믹스에 따른 달러 당 80엔에서 120엔으로의 엔화 약세도 빼놓을 수 없다. 50%에 달하는 달러 대비 엔화 약세는 한국 제조업체의 대외 수출가격 경쟁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고 이것이 2014년 이후 수출 부진과 함께 수입 부진을 동반한 것이다. 게다가 당시 정부는 엔화 약세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474정책’을 내세워 원화 환율을 강세(달러 당 1200원대에서 1000원대로 낮춤)로 돌려놓음으로써 2014년 이후의 수출 부진을 부추겼다.

수입이 정상궤도로 돌아오려면 수출이 활성화되는 방법밖에는 없다. 수출이 정상화 되려면 제조업 경쟁력 회복도 중요하지만, 엔화에 대한 원화환율의 정상화(즉 원화 약세)도 경쟁력 강화 못지않게 중요하다. 과거 경제위기도 사실 원화환율 절하 때문에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 정부는 ‘2030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거창한 현수막을 내걸었지만, 엔화 대비 30%에 달하는 원화 고평가를 그냥 두고 제조업 경쟁력을 살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요원해 보인다.

■ 아베노믹스 진행되면서 한국 수출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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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로이터=연합뉴스]


2012년 12월 아베 신조가 총리로 취임한 뒤 내놓은 일련의 경제정책, 즉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무제한 양적 완화와 엔저 정책이었다. 장기적 경기침체와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해 통화 공급을 확대함과 동시에 엔화 절하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2011년 달러당 80엔을 밑돌던 엔화 환율이 2015년 121엔까지 치솟는 엔저 기조는 일본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높였다. 일본 수출은 2013년 14.9%, 2014년 5.7% 증가했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는 아베노믹스의 실패를 점쳤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산업연구원 자료(‘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전략과 시사점’, 2016년 5월)에 따르면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기업의 채산성은 급격하게 개선됐다. 일본 수출기업은 이런 이익을 기반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설비 과잉 상태에 있는 업종(주로 액정·철강·석유화학산업 등)을 통합·재편하는 등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다. 이에 더해 법인세 인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 등을 통한 투자환경 개선을 도모해 일본 기업의 국내 회귀를 촉진했다.

반면 당시 한국 원화는 달러에 대해 2013년 2.8%, 2014년 3.8% 강세로 반전됐다. 따라서 원화는 엔화에 대해 2013년 이후 큰 폭의 강세를 띠게 됐다. 이 여파로 일본 제조업은 급속도로 활력을 되찾았지만 한국은 심각한 수출 부진과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아베노믹스가 한국의 수출을 저격한 셈이다. 2015년과 2016년 연속 수출이 역성장했고 2017년 반도체 특수로 인한 수출증가율(15.8%)을 제외하면 수출은 5% 성장도 어려운 상황이 7년째 지속한 셈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운 J노믹스(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가 아니라 아베노믹스를 거울삼아 규제 개선과 법인세 인하, 환율정책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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