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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자24시] 모호한 규제에 날개 접은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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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7년 4월 국내 맥주 구독시장을 개척한 벨루가는 출범 3개월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주류 고시 개정으로 그해 6월부터 주류가 음식에 '부수한' 형태일 때만 배달이 가능해지면서 벨루가의 사업이 위법행위가 됐다. 당시 벨루가는 간단한 견과류와 수제맥주 4병을 판매했다. 맥주가 주된 메뉴이고 음식은 끼워 파는 수단처럼 비칠 소지가 있었다.

앞서 사업을 론칭하기 전 국세청 등에서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몇 개월 만에 정부 측 입장은 '벨루가가 주류 유통질서를 교란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큰 꿈을 안고 창업한 김상민 대표는 다소 억울했지만 개정 고시에 맞춰 사업을 정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벨루가는 2017년 말 다시 문을 열었다. 이번엔 CJ와 손잡고 치킨, 스테이크 등 음식 비중을 높였다.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음식은 43%로 높이고, 맥주는 35%로 낮췄다. 주류 마케팅도 자제했다. 갖은 노력에도 벨루가는 2019년 7월 사업을 또 중단했다. 관계 당국이 벨루가가 미리 결제를 진행하고 정기배송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한 차례 실패 경험이 있는 김 대표는 벨루가를 다시 론칭할 때 누구보다 신중했다. 혹여 음식과 주류 비율이 '부수적' 조항에 부합하지 않을까 질의도 수차례 넣었다. 이에 대한 답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결제 방식'과 '배송 기간'이 위반 행위로 간주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 대표는 "카드형 상품권(기프티콘)으로 주류를 구매하는 것도 결국 선결제"라며 "주문받고 몇 시간 내 음식을 배달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는데 행정지도를 받게 돼 유감"이라고 토로했다. 올해 초 론칭한 한 주류 정기구독 서비스의 경우 벨루가와 같은 형태이지만 전통주라는 이유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벨루가의 발목을 잡은 것은 '모호함'이다.

개정고시 발표 후 2년이 지났지만 '부수적' 조항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어떤 음식에 얼마만큼의 술이 허용되는지 아는 이가 없어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생필품에서 시작된 구독경제가 여러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결제, 정기배송 등을 위반 행위로 지적한 것도 아쉽다. 의도와 상관없이 범법자로 전락하는 기업들이 계속 나올까 걱정이다.

[유통경제부 = 심희진 기자 edg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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