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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World & Now] 수세적 방어와 도광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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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불거진 한일 갈등을 유심히 지켜보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 언론은 지난 2주 동안 '한일 무역분쟁'을 주제로 다수의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신화통신은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역사 문제에서 양측이 쉽게 양보할 것 같지 않다"며 "결국 모두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이번 한일 분쟁을 계기로 한국 기업들은 핵심 기술의 국산화와 원재료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라며 "이는 중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중국 언론 반응에서 미국과 통상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한일 대립 양상은 미·중 무역전쟁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최근 한일 분쟁의 근간에는 역사 갈등의 재점화와 함께 한국 경제(기업)의 일본 위협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G2로 올라선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궈멍(中國夢)을 앞세워 미국과의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다 미국은 무역 불균형과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주장하며 대중 관세 부과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신의 패권 지위를 중국이 넘보고 있다는 경계심이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각국에 민감한 사안이 거칠게 충돌하면 필연적으로 명분론적 싸움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양측의 실익을 해친다. 그 과정에서 각자가 입는 손실의 정도는 힘의 역학 관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지난 1년 넘게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중궈멍의 시계추를 다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로 되돌리고 있는 이유다. 자존심과 명분에 기대 힘센 상대와 맞붙기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내실을 다진 다음 훗날 진정한 승부를 도모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중국은 첨단 기술 개발과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매년 국방예산 8~10%를 늘리면서 각종 첨단 무기 체계를 정비하고 '자유무역 수호자'라고 자평하면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와 위안화 국제화도 추진하고 있다.

한일 갈등이 단기간에 풀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실익을 챙기는 묘안을 마련한 다음 상대에 맞대응하는 전투를 펼쳐야 한다.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니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수세적 방어전'은 만약 이기더라도 '반쪽짜리' 승리로 남게 된다. 한비자 십과에 '고소리, 칙대리지잔야(顧小利, 則大利之殘也)'라는 성어가 나온다. 이는 '작은 이익을 돌아보면 큰 이익을 해치게 된다'는 의미다. 지금 당장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력과 내실을 키우는 데 집중해 향후 상대가 함부로 침략할 수 없는 위엄을 세우는 것이다. 한비의 교훈이다.

[베이징 = 김대기 특파원 daekey1@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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