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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60] 文대통령은 천재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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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창일 '한민족전쟁사'

조선일보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대부분 못마땅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연민이 일 때도 있었다. 그가 국제무대에 설 때다. 나 자신이 으리으리한 장소에서 저명인사들과 어울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도와주는 스태프는 많다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폼 나게 세계 정상들과 사교를 하고 국익을 증진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떨리고 긴장될까, 싶어서였다.

물론 국내에서도 문 대통령이 마주해야 할 저승사자―주사파 운동권, 민노총, 전교조 등등 문재인 정권 장악의 공신이며 대주주―들은 많고 문 대통령이 그들을 대차게 휘어잡고 군기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닐 듯하지만 그것까지 내가 안쓰러워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우군이 오늘의 채권자가 되는 일이야 정치의 철칙일 테니까. 어쨌든 문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살벌하고 독기 어린 표정에서부터 흐뭇하고 사람 좋은 미소까지 여러 얼굴을 보이지만 초라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참석할 때는 대형 국제회의에 너무 안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낙담스러우면서, 도금된 미소 뒤에서 자신을 냉철히 평가하고 있을 외국 정상들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며 다가가기가 얼마나 어렵고 두려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이 지난 2년간 참석한 G20과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그 자신도 미숙하고 스태프의 보조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스타일을 구기는' 모습을 여러 번 노출했다.

그런데 오사카 G20 회의 이후에 청와대가 배포한 영상에는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즐기며 십분 활용하는, 외교가 '노는 물'인 사람으로 비쳤다. 여러 정상과 화기애애한 인사를 나누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짧지만 쓸모 있는 대화를 하는 듯 보였다. 그 후에 문 대통령이 정상회의의 공식 세션을 반도 참석하지 않고 유독 그 (홍보) 동영상을 찍을 때만 공식 세션에 처음부터 참석했다는 말을 듣고는 속에서 쓴 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나중에 몇 정상과 단독 회담을 하느라 공식 세션에는 빠졌다는 해명을 접했지만 번개팅같이 짧은 단독 회담이 공식 세션보다 가치가 있었을까?

온창일의 '한민족전쟁사'를 보면 외교적 담판으로 적을 물리쳤던 을지문덕이나 서희는 기개와 기지나 말재주만으로 그것을 해낸 것이 아니었다. 면밀한 상황 판단과 최적의 전략, 그리고 담대함과 목숨을 건 우국충정으로 이룩한 것이었다. 국가 위기엔 홍보성 연기력의 효용은 제한적이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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