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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검·경의 피의사실 흘리기, 앞으로 수사 대상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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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울산 경찰관 2명 수사

대검 수사심의위, 타당성 인정

검사나 경찰관이 수사 도중 피의사실을 흘리면 앞으로는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민감한 사건에 대한 기소 여부를 정하는 검찰 내부 위원회가 피의사실 공표도 수사해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형법 조항은 그동안 검찰이 관련 사안을 기소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22일 울산지검이 수사 중인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 사건을 계속 수사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울산지검은 조만간 해당 경찰관 2명을 조사한 뒤 재판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해 기소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 사건은 울산경찰청이 지난 1월 '면허 없이 약국에서 약을 지어준 여성을 구속했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보도 자료를 내면서 시작됐다. 통상 경찰은 수사가 끝나면 사건을 검찰에 보내면서 보도 자료를 내고 '실적 홍보'를 해왔다. 그런데 울산지검은 지난 6월 이것이 피의사실 공표라며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 2명을 입건해 수사했다. 형법은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기 전까지는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외부에 밝힐 수 없게 돼 있다. 경찰이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이에 경찰이 "지금까지 피의사실을 가장 많이 흘린 곳은 검찰"이라고 반발하면서 이 사건은 지난달 검찰수사심의위로 올라왔다.

검찰수사심의위는 논란이 되는 사건을 검찰이 계속 수사하고 기소하는 게 옳은지를 심의하는 외부 전문가 그룹이다. 위원회 의견은 강제성은 없지만 검찰은 이를 대부분 받아들인다.

검찰수사심의위는 이날 대검에서 회의를 갖고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경찰 내에선 "보도 자료 낸 게 피의사실 공표라면 검찰도 수사 대상"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수사기관이 '국민 알 권리' 명목으로 수사 내용을 언론에 브리핑하던 관행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검찰수사심의위 회의에는 이번 사건의 양 당사자가 참석했다. 울산지검에서는 황의수 차장검사가, 울산경찰청에서는 해당 경찰관들의 변호인 2명이 들어갔다. 양측은 각각 30분간 의견 진술을 했다.

경찰 측은 이 자리에서 "내부 공보 규칙상 '공익을 위해 알려야 할 사건'이어서 보도 자료를 낸 것"이라며 "검찰이나 다른 사정 기관도 비슷한 공보 규칙을 갖고 있고, 이에 따라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경찰청의 이번 사건만 콕 집어 문제 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경찰 공보 규칙보다 법이 우선"이라며 "기소 전에 피의자에 관한 정보를 보도 자료로 외부에 공표한 것은 불법"이라고 맞섰다고 한다. 울산지검이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것은 대검 차원의 결정이라기보다는 원칙론자로 알려진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 뜻이 강했다고 한다.

수사심의위는 울산지검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검찰이 제일 난감하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피의사실 흘리기'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 검찰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현 정권 들어서도 이른바 '적폐 수사'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하면서 중계방송하듯 피의사실을 외부에 흘렸다. 한 변호사는 "이런 것들을 경찰이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검찰은 큰 곤욕을 치를 것"이라고 했다.

실제 경찰은 검찰이 수사 중에 피의사실을 흘린 것으로 볼 수 있는 최근 5년간 사례들을 다수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사실 공표죄의 공소 시효는 5년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누군가 검사를 고발하게 된다면 검찰은 이번 사건과 똑같은 기준으로 수사하고 기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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