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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줄서서 먹었는데… 마라탕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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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49곳중 23곳 위생 등 불량

일부 원료업체 영업 신고 안하고 제품에 제조 연월일도 표시 없어

무더위가 덮친 지난 6월 말, 서울 서대문구 A 마라탕 전문점 주방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단속반원 두 명이 들어섰다. 꼼꼼하게 뒤져볼 것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주방 튀김기와 환풍구 주변에 시커먼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식약처는 올 들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중국 사천 지방 요리인 마라탕 전문점에 대해 지난 한 달간 집중 조사를 벌였다. 전국 마라탕 전문 음식점 49곳과 이곳에 원료를 공급하는 업체 14곳을 불시 점검했다. 식당 23곳과 납품업체 14곳 등 무려 37곳이 위생 불량 등 식품 위생 법령을 어긴 것으로 확인됐다. 단속 대상 열 곳에 여섯 곳꼴(59%)이었다. 단속반 관계자는 "바닥 타일이 벗겨진 자리에 거뭇거뭇 곰팡이가 핀 곳도 있고, 요리할 때 천장에 튄 기름때가 덩어리로 뭉쳐서 바닥으로 떨어지려 하는 곳도 있었다"고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국을 몇 권역으로 크게 나눈 뒤 온라인상에서 인기 있는 마라탕 전문 음식점 등을 검색해 단속할 식당을 추렸다"며 "원료 공급 업체는 식당에서 문제 있는 원료가 발견되면 그걸 공급한 곳을 역추적하는 방식을 썼다"고 했다. 사람이 북적대는 맛집을 중심으로 골라 2인 1조 단속반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방식이었다. 단속 대상 음식점 49곳 중 9곳이 A식당처럼 위생 상태가 불결한 '위생적 취급 기준 위반'으로 적발됐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재료 공급 업체였다. 식약처 관계자는 "마라탕 식당 주인 중에는 인기 있는 마라탕 음식점에서 요리를 배운 뒤 새로 가게를 차리고 소스를 공급받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스에 제조 연월이나 원재료 등이 안 적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경기 안산시 B공장은 수입 신고를 하지 않고 들여온 원료로 샤부샤부 소스를 만들어,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은 채로 마라탕 전문 음식점에 판매하는 등 한 번에 4가지 사항을 위반하기도 했다.

다른 식자재 관리도 허술했다. C업체는 비위생적 환경에서 만든 건두부를 음식점에 팔면서, 제품 표시 사항에 영업장 이름을 허위로 적고 제조 연월일도 표시하지 않았다. D업체는 영업 신고도 하지 않고 훠궈 조미료를 만들어 음식점에 납품했다.

식약처는 "단속에 걸린 원료 공급 업체 14곳 중 6곳(42%)은 아예 식품 제조 업체로 등록도 되지 않은 곳이고, 14곳 중 3곳(21%)은 중국 등에서 수입 신고 없이 들여온 원료를 팔았다"고 했다. 이 14개 업체가 식자재를 납품해온 식당은 총 100여 곳으로, 이번에 걸린 식당 23곳은 그중 절반이 채 안 된다. 비위생적 재료로 마라탕을 만들어 팔면서도 아직 걸리지 않은 식당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식약처는 이번 단속 결과를 각 지자체에 통보하고, 추가 단속을 권고했다. 앞으로 각 지자체가 식약처 통보 결과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따진 뒤 행정 처분을 내리고, 행정 처분 조치가 끝나는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다시 점검해 개선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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