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분위기는 오히려 선거 결과에 고무된 아베의 한국 압박이 더 거세지리라는 쪽에 가깝다. 우리 청와대와 여당 역시 먼저 손을 내밀 생각이 없다. 양국 집권층 모두 강 대 강의 대결 구도가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 내 공고해진 혐한(嫌韓) 기류는 아베의 보복 조치에 박수를 보내면서 선거에 보탬이 됐다. 문재인 정부 역시 반일(反日) 깃발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고 어려운 경제 사정을 일본 탓으로 돌리는 부수 효과까지 노리고 있다. 겉으로는 양국 정부가 가시 돋친 공세를 주고받고 있지만 속으로는 서로 정치적 이득을 주고받는 적대적 동맹 관계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한·일 수뇌부가 이런 식으로 정치적 수판알을 굴리면 피해는 양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수출 규제가 장기화되고 확대되면 한국의 핵심 산업은 치명상을 입는다. 이미 둔화 조짐이 완연한 성장 엔진이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산업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일본 산업 역시 타격이 작지 않다. "일본이 글로벌 산업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국제사회 여론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아베의 어리석은 무역 전쟁'이라고 비난했다. 한·미·일 협력 체계가 흔들리면 북핵 폐기도 어려워진다는 미국의 우려도 흘려버릴 얘기가 아니다.
양국 집권층이 감정싸움을 벌이고 국민도 함께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어 당장은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섣불리 봉합에 나섰다가 뻐그러지면 기회를 다시 잡기도 어려워진다. 다만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일본은 수출 규제 조치를 한국 기업에 실질적이고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조절해야 한다. 정부도 강제징용 일본 기업으로부터 압류한 자산의 매각을 막아야 한다. 양국 모두 이런 한계를 정해 상황을 관리하면서 절충을 모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반일과 혐한에 기댄 정치적 반사이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정파적 계산으로 국익을 해치는 것이야말로 매국이요 이적행위다. 국민이 밝은 눈으로 꿰뚫어 보고 반드시 회초리를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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