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성 이해… 대변인실보다 앞선 발언, 장점보다 단점 커”
중도층 이탈로 국정동력 약화 우려… 본인은 계속하겠다는 의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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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페이스북 정치가 한일 갈등 국면에서 연일 논란을 부르고 있다. 조 수석은 일본이 경제 보복을 시작한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일본 정부와 국내 보수 진영을 싸잡아 비판하며 ‘극일(克日) 여론 전쟁’의 첨병을 자처하고 있다. 청와대는 조 수석을 옹호하지만, 여권에는 그의 ‘과잉 행보’가 남길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수석은 왜 그토록 페이스북에 열심일까. 정치권에선 다양한 해석이 오르내린다. 우선 여론과 직접 소통을 즐기는 조 수석의 ‘개인 성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는 서울대 법대의 ‘스타 교수’로 불리던 시절부터 페이스북을 적극 활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현 정권의 입장을 누구보다 깊이 아는 조 수석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홍보 역할을 위임 받았다는 설이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름으로, 그것도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민감한 시기에 그가 페이스북에 연달아 글을 올리는 것에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실려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조 수석을 그 만큼 신뢰한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조 수석을 참모가 아닌 동지로 보고 있는 듯 하다”고 했다.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대중과의 직접 소통은 세계 정치의 흐름이기도 하다. ‘트위터 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적인 예다. ‘광장 정치’가 사라진 정치권에서 SNS를 통한 메시지 전파는 속도나 파급력 면에서 더 효과적이다. 중도층을 끌어안는 것보다 ‘우리 편’을 강화하는 것이 것이 유효한, 양극화한 정치 지형에선 SNS의 힘이 더 세졌다.
문재인 정부도 조 수석의 페이스북 정치의 효과를 상당히 누렸다. 조 수석은 올해 4월 국회의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글 수십 건을 올림으로써 여권의 논리를 전파하고 여론을 주도했다. 조 수석은 여론의 흐름을 바꿀 만한 인지도를 가진 거의 유일한 청와대 참모다. 때문에 청와대가 그의 ‘페이스북 정치’를 국정운영의 수단으로 활용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조 수석이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해야 할 민정수석이라는 점이다. 청와대 내부에도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이 아닌 그가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 전면에 나서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조 수석이 교수 시절부터 페이스북을 열심히 한 만큼 그의 순수성은 이해하지만, 대변인실 등 공식 기구보다 앞서나가는 발언을 하는 것은 장점보단 단점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경제 보복 국면에선 조 수석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유력한 차기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거론되는 고위 공직자가 ‘죽창가’ ‘친일’ ‘이적’ 등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한 편가르기 발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22일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 수석의 페이스북 정치와 관련해 “공직자로서 갈등을 오히려 확산ㆍ심화시키는 역할은 적절치 않다”며 “한일 관계나 이를 둘러싼 문제들은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하기 때문에 이분법적으로 그렇게 단정해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조 수석 때문에 한일 갈등 해법을 전담해야 하는 외교안보라인이 결과적으로 소외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수석이 22일까지 페이스북에 40건의 글을 올리는 동안, 주무부처인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정부 관계자는 “전략적으로 절제된 반응을 보여야 하는 부처 입장에선 청와대 발 강경 메시지를 따라가기도, 가만히 있기도 곤란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층은 조 수석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열광하겠지만, 중도층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중도층의 이탈은 국정 동력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일본 문제와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조 수석보다 외교나 경제 분야 참모에게 역할을 맡기는 것이 대국민 메시지 관리 차원에서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보수진영과 날을 세우는 조 수석의 목소리가 문 대통령의 메시지로 오인되는 것도 문제다.
청와대도 일본 문제와 관련한 메시지를 정교하게 관리할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보다 적극적인 메신저로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다만 조 수석은 외교안보라인이나 홍보라인과는 별도로 페이스북 정치를 계속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자신의 행보가 입길에 오를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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