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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①"동아시아 밸류체인 훼손..장기화 땐 큰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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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갈등 전문가 제언]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터뷰

"미·일 무역협정 중, 美 중재 가능성 희박"

"물밑·비공식 접촉 필요한 때..장기전 예상"

"日 대화 요구에 韓 무대응 일관..외교적 과오"

이데일리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사진=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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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한·일 갈등으로 그동안 공고하게 쌓아온 한국과 일본의 공급망(Supply Chain)이 무너졌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로 빚어진 한일 갈등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를 예고했고, 우리 정부 역시 일본의 추가 보복조치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일 양국의 통상 분쟁이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가 밸류 체인(가치 사슬)으로 엮여 있는 상황에서 무역분쟁은 승자 없는 싸움이 될 것이 자명하다.

◇동아시아 지역 밸류체인 ‘흔들’…국제신인도 훼손

안덕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22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로 한·중·일이 중심이 되는 동아시아 밸류 체인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차이나메리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전 세계가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대세가 글로벌 밸류 체인(Global Value Chain)이었다면 최근에는 지역 밸류 체인(Regional Value Chain)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문제는 동아시아 지역 밸류 체인에는 첨단 IT 산업에 대한 협력관계가 높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첨단 IT산업은 사이클이 짧기 때문에 수급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제3국이 볼 때는 불안한 한국과 일본 대신 EU나 나프타(NAFTA) 등 다른 시장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끝났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강경 대응 기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무역조치가 단순히 선거용 때문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일각에서는 일본이 송금 중단 및 비자 발급 중지 등을 할 것이라고 걱정하는데 그렇게까지 문제를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이미 화이트리스트에 1000개 가까운 품목이 해당한다. 초기에는 5~10% 기각을 해서 신호를 보내다가 상황에 따라서 기각률을 올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안 교수는 “한·일 관계가 단기간에 회복되지 못할 경우 전 세계적으로 한·일 공급망은 믿을 수 없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큰 타격”이라고 강조했다.

◇“미·일 무역협상 중…韓 더 난처해질 것”

그는 그러면서 한·일간 통상문제가 장기전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양국간의 현 기조를 고려했을 때 외교적·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본 것이다. 안 교수는 “양국이 주고받는 발언을 보면 서로를 자극하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단기간에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안 교수는 “언론을 통해서 미국과 일본에 잇따라 고위공직자를 파견하며 대화를 시도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물밑에서 비공식 접촉을 늘리는 것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중재 가능성도 낮게 봤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안보·경제적 이익을 고려했을 때 한국 편을 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전제조건으로 ‘둘 다 원할 경우’를 내걸었다. 또 “바라건대 그들이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이며, 우선적으로 당사자인 양국이 풀어야 할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현재 미·일간 진행 중인 양자무역 협상에 주목했다. 안 교수는 “현재 미국과 일본은 양자무역 협상 중에 있고, 실제로 일본의 참의원 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오히려 미·일 무역협상을 계기로 통상 측면에서는 일본이 미국을 포섭하는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더 난처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 “최악의 상황에서는 일본의 무역보복조치 여파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쳐야지만 미국이 한일 갈등에 개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교수는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 조치로 거론되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파기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안보 등을 활용해 미국의 주위를 끌어보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되지만, 최근 안보와 관련해 다양한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국내 반발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구권 해석’ 경제문제로 비화, 외교적 실책

안 교수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상당히 정교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실제로 한국 수출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굉장히 교묘하다. 일본이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국제 여론을 고려하듯, 이번 수출 규제 조치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보복조치가 아닌 일본의 안보 우려에 따른 무역관리 재검토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안 교수는 이 자체만으로 불확실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그는 향후 신제품 개발 및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기업이 다음 세대를 개발하고 생산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막혀버릴 수 있다”면서 “당장 피해를 입지 않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은 이런 것들이 더 큰 피해”라고 부연했다.

그에 비해 우리 정부 대응은 너무 부실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 문제를 경제·통상 문제로 비화시켜 온 것은 명백한 ‘외교적 과오’”라고 일침 했다. 더욱이 이 같은 우리 정부의 무대응 전략이 오히려 국제 사회를 설득시키는 근거를 약화시켰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정부가 국제사회에 가서 일본의 경제 제재 조치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고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모든 국가가 우리를 호의적으로 생각해줄지는 모르겠다”면서 “우리는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다음을 얘기하지만, 일본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얘기하면 누가 옳고 그른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쓴소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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