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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내가 하면 극일, 남이 하면 친일 혹은 망국...여의도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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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토리뉴스] 靑과 與 '일본이 경제전쟁 도발' / 한국당 '그동안 정부는 뭐했냐' / 조국 '애국이냐 친일이냐, 도리의 문제' / 한국당 '총선용 친일 프레임' / 여권 '일본이 걸어온 싸움에 모두 다 함께' / 한국당 '구한말 쇄국정책, 그럼 망국의 길로' / 우리 정서에 가장 민감한 단어인 日, 아차하면 끝

일본 아베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를 놓고 여야가 벼랑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여야 모두 일본 조치를 비난하면서 극일(克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상대 길목에 ‘친일(親日)', '망국(亡國)'이라는 각기 다른 프레임을 쳐 놓은 채 날선 공방을 주고 받고 있다.

◆ 일본의 경제보복...판문점 남북미 회동 후, 일본 참의원 선거 전 묘한 시기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오는 4일 0시를 기해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등 반도체 관련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조치에 들어간다"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들 소재는 세계 1위 한국 반도체 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로 일본이 수출을 막는다면 삼성전자 등 우리기업은 치명타가 불가피하고, 수출의존도가 80%에 이르는 우리나라 경제도 막대한 피해를 입게된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조치를 '한국 대법원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만 표시'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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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사진)가 이끄는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 후 지지율은 7%포인트 하락한 49%를 기록했다. 비즈니스저널 캡처


일본 조치는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남북미 판문점 회동' 직후, 7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나온 까닭에 여러 해석을 낳았다.

◆ 여권 "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VS 한국당 "日 조치 유감이지만 정부가 자초"

일본 조치에 대해 1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는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부정이며, 국제사회의 인권과 양심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일본 정부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일본이 첨단 재료 3개의 한국 수출 규제를 밝힌 것은 건전한 한일관계 수립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단시안적 결정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강제징용 배상 협상을 6개월 이상 나 몰라라 묵힌 정부, 외교무능 고립주의 외톨이 정권의 북한우선 외교가 (자초한 일이다)"고 여당과 다른 반응을 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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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2주...日 선거용· 한국 성장에 대한 본격적 딴지, 한국당 "우리도 힘 보태야"

일본 조치에 대해 7월 1,2주는 △징용판결에 대한 보복성격 △ 아베의 참의원 선거 지지층 결집 노림 수 △ 일본의 1/3수준 이상까지 따라온 한국 경제를 지금 견제하지 않을 경우 추월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를 이뤘다.

민주당은 '일본경제보복 대책특위'를 만들었지만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조치를 '보복'이라는 좁은 틀로 해석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 7일 일본경제보복에 따른 긴급대책회의에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뒤늦은 대응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은 국민과 기업들의 피해를 막는 데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일단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모두 우리 당도 힘을 보태야 하겠다"며 정부의 대응에 협조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 日 '불화수소 북한으로' 뒤 흐름 변해...조국 죽창가→文 대통령 '日에 경고'

비교적 완만하던 흐름이 확 바뀐 것은 지난 10일 일본 후지TV가 "한국이 (북한 등으로)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 불법수출 적발건이 2015년부터 올 3월에 걸쳐 총 156건에 달했다"고 보도한 뒤부터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출입 통관, 전략물자 수출허가 및 관련 업계 조사를 통해 일본산 불화수소가 우리나라를 경유해 북한으로 반출된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근거없는 비난을 중단하라"고 반박했다

일본 조치가 경제보복 이상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판단한 청와대와 여권은 강경 모드로 돌입했다.

13일 조국 민정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항일운동 신호탄을 쏘듯 '(일본에 맞선 동학농민들이 불렀던) 죽창가가 다시 생각났다'는 글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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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 때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제한으로 시작했다. 이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일본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이는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한다"고 상대국을 향한 가장 강한 표현인 ‘경고' 단어까지 사용했다.

◆ 황교안 "조건 없는 靑회동" 제안 뒤 日 후지TV "문재인 경질~"→ 與 '침략, 전쟁’ 초강경 모드 전환

여권과 여론 움직임이 심상찮다고 느낀 황 대표는 15일 "최근 한일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어떤 형식이든 좋다"며 대통령과 청와대 회동을 제의했다. 그동안 단독회동을 요구한 것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으로 청와대는 18일 만나자고 했다.

이런 가운데 17일 청와대와 여당은 초강경 자세로 다시 고쳐 앉았다. 청와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국내 언론의 일본어판 기사가 '왜곡'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 논평을 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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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극우 성향의 일본 후지TV도 히라이 후미오 해설위원 입을 통해 "(이번 갈등에서 한국은) 일본에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문재인을 자르는 것 정도~"라며 도발 수위를 한껏 높였다.

발끈한 민주당은 '경제보복 대책특위'를 '경제침략 대책특위'로 명칭을 변경했다. 보복이라는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일본이 싸움을 걸어왔다며 수위를 '전쟁'이라는 최고 수준으로 급상승시켰다.

◆ 조국 "대법 판결 비방· 정부 매도는 친일...日과 싸워 이겨야, 文은 서희이자 이순신"

13일 '죽창가' 이후 대일본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조국 수석에 대해 청와대는 ‘개인적 견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조 수석 생각이 청와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조 수석은 18일 "중요한 것은 보수, 진보가 아니라 '이적'이냐 '애국'이냐"며 아슬아슬한 글을 남긴 뒤 20일엔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우리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단어 중 하나인 '친일파'를 서슴없이 끄집어 냈다.

이어 21일 "문재인 정부는 국익수호를 위하여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며 외교적 노력을 강조하면서도 "법적·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고 북소리를 크게 울렸다.

◆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黃 "靑과 생각 다르면 친일파?, 靑 대응 구한말 쇄국정책...경제정책 바꿔라"

청와대와 여권이 12척의 배로 일본을 물리쳤던 이순신 장군처럼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극일·克日)며 여론 몰이에 나서 효과를 보자 한국당은 청와대를 향해 외교적 해법과 경제정책 대 전환을 주문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았다.

황 대표는 22일 "당이나 국민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일본이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 없다"며 일본을 때리는 한편 "그런데 청와대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죄다 친일파라고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 태도인가"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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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정권은 외교적 해법도 없고 맞서 싸워서 이길 전략도 없이 (내놓은) 대응은 나라를 패망으로 몰아갔던 구한말의 쇄국정책이나 다를 것이 없다"라며 ‘친일’에 맞선 강력한 단어로 ’망국’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극일로 율곡 선생이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10만 양병을 주장했듯이 우리 경제를 지킬 10만 우량기업 (양성)이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반시장, 반기업,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기할 것"을 촉구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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