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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아이야, 나도 자라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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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딸을 보며 떠올리는 당신의 분노, 비로소 깨닫는 삶의 비밀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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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것은 가슴 아픈 행위다. 나는 멀리 있는 당신의 고된 하루를 떠올리며 시름에 잠기고 내 곁에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때로 서글퍼진다. 잠자는 아이들이 항상 평온한 것만은 아니다. 그네들도 악몽에 시달려서 온몸을 뒤틀기도 하고 그럴 때면 나는 아직 여물지 않은 몸을 힘껏 껴안고는, 괜찮다, 다 괜찮다고 속삭여주는 일밖에 할 수 없다. 내가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근거는 참으로 빈약하다. 나 역시 악몽을 잘 알고 한여름 더위가 스러지고 해가 기우는 것처럼 지나가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무더위는 다시 올 것이고 혹한도 찾아올 것이며 장마 또한 예전과 비슷한 강도로 쏟아부으리란 것도 안다.

나는 아이에게 ‘보통의 존재’



한때는 묻고 또 물었다. 과연 인생에 선의란 게 있을까요. 왜 이 세상에 어처구니없이 태어나서 풀리지 않은 꾸러미처럼 내 앞에 던져진 인생을 꾸역꾸역 짊어지고 살아야만 할까요. 때로는 지독한 악의로만 똘똘 뭉친 채 배달된 소포 같은 이 인생을 내 것인 양 끌어안고 있어야 할 이유를 찾아헤맸다. 정처 없이 떠돌다가 잠정적으로 도달한 타협점은, 인생에는 아무런 의도도 없다는 것이었다. 선의도 악의도 없이, 별다른 실체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영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적절한 좌표를 찍어 정리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어쩌면 내 불안을 잠재우려는 몸짓에 불과했다. 순간을 지나가기 위해 벌이는 춤이었다. 어리석지만, 별수 없이 나란 인간은 이 과정을 이어가고 말 것이이라는, 체념일지 인정일지 잠정적 포기일지 모를 자리에 이르러 나와 삶을 향해 비탈길을 달려가듯 쏟아지던 질문을 멈춰 세웠다. 속도가 달라지니 풍경이 변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풍경을 비집고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삶 따위는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이 무작정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어릴 적부터 이어진 부모를 향해 쏟아부었던 마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전의 사랑은 맹목이자 환영이자 더 나아져야만 이를 수 있는, 내 존재와 내 삶의 부정이었다면, 이후에 찾아온 사랑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가난한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은 그저 나를 통해 세상에 도착한 것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잠시 통과해 나가는 작은 통로, 비좁은 세상에 불과했다. 그들이 내게 바란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 그러니까 따스한 품과 순간의 공감과 배고픔의 충족과 함께 있다는 위로였다. 오히려 나의 바람을, 결핍을 그들에게 투영한 게 더 많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한동안 자꾸만 미안했다. 이렇게 신산한 삶에, 혼돈뿐인 세상에, 너희를 뻔뻔하게 던져둔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역시 오만임을 알았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인생에서 대단한 존재도 아니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나가는 한 자리, 되도록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는 한 자리로 족하면 최선일 존재였다.

둘째 딸이 만 일곱 살이 되었을 무렵이다.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왔다.

“엄마, 이상하게 자꾸 슬퍼져요.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그리고 내 품에 쏟아지듯 안겨서 잠시 흐느껴 울었다.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너도 나처럼 앓고 있는 거니. 하지만 금세 깨달았다. 이 슬픔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너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그것을 너와 나만의 특별한 연대의식으로 생각하느니 이 세상 모두를 관통하는 슬픔 정도로만 생각해두자. 단지, 내가 너를 조금 더 닮아 그 질감을 더 가깝고 비슷하게 느낄 수 있으니 기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해보자.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도 그 느낌을 아주 잘 알아.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돼.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잘 감지하고 표현하는 데 능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그런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면 그 순간에 조용히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다보면 어느새 파도가 떠나는 것처럼 그 감정도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래도 우리는 맞닿아 있다



어릴 때부터 아이는 잘 웃고 자주 우울해했다. 엉뚱하고 유쾌하기도 했다. 엉엉 울기보다는 사람의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를 떠나곤 했다. 새침하고 주변에 대한 경계가 심했지만, 한번 가까워지면 조곤조곤 말이 많았다. 생각의 가지가 무성해서 때로 자기가 골몰하는 것 외에는 무심해 보이기도 했다. 걱정을 찾아헤매는 엄마였던 나는 그걸 붙잡고 고민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사교적이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만,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감지하곤 했다. 타고난 무심함일 수도 있고 게으름일 수도 있고 지나친 자기 세계로의 몰입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사무치게 느끼고 있을 때라 아이가 힘들어질까 미리 걱정했다. 그리고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아이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아빠가 나를 보며 화냈던 어느 부분도 여기에 맞닿아 있구나. 당신에게서 나는, 당신의 뿌리로부터 이어진 분리되지 않은 존재였구나. 제 존재의 연장처럼 나를 바라보고 염려하고 분노했구나. 당신은 당신보다 더 나은 나를 통해 당신을 보고 싶었구나. 당신이 아프듯 내가 아팠구나. 어떻게든 나를 바꿔서 인생을 유유히 비상하듯 살아가는 홀가분한 나를 보고 싶었구나. 거기에 당신 삶을 조금은 얹고 싶었구나.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나라는 존재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 내가 살아온 과정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아이에게 변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언젠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내 몫은 때때로 너를 안고 함께 느껴주는 일밖에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를 아끼고 보듬고 잘 살아가고 싶어졌다. 너와 나는 다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맞닿은 지점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너와 나는 우연히도 더 많이 맞닿은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맙게도 뒤늦게 찾아와준 네 덕택에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천천히 배우는 중이다. 잘 살아남겠다. 네가 어느 날 내게 와서 인생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무작정 울고 싶을 때, 괜찮다고, 하지만 무슨 느낌인지 안다고 꼭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를 ‘인간’으로 바라볼 때



그렇다고 두려움이 온전히 가시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떨칠 수 없는 악몽에 온몸을 뒤틀며 깨어났다. 내 곁에서 자고 있던 아이 역시 신음을 내지르며 작은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놀라서 아이를 껴안았다. 아마도 그때 기도란 걸 한 것 같다. 제발, 제발, 나의 악몽이 아이를 찾아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내가 아는 악몽 따위는 모르게 해주세요. 결국 다시 묻고 말았다. 이 세상을, 이 삶을 관통하는 선의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이 아이의 삶을 흐르듯이 놓아주어도 되는 걸까요. 이기심 때문에 무작정 보호하고 싶은 거라고 해도, 극단의 고통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기적을 주실 수는 없나요.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열 살을 넘어서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소식을 주고받는 단짝 친구가 생겼다. 지금도 여전히 가장 가깝고 마음 깊숙한 곳을 나누는 친구다. 밤마다 잊지 않고 내 볼에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던 아이는 이제 피로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몰려오는 밤에나 내 방을 찾아 침대 속을 파고든다. 며칠 전 무슨 까닭인지 뜬눈으로 밤을 새운 아이가 방문을 열고 살금살금 걸어와 잠든 내 손을 스르르 거머쥐었다. 숨을 죽이고 눈을 감은 채 가만가만 아이의 기척을 살피었다. 잠시 뒤 새근새근 고르게 가라앉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때의 숨결을 닮은, 평온하고 깊은 잠의 기척이었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역시나 까무룩 잠들어 있었다.

아이 곁에 누워서, 다시 잠이 들지 않는 깊은 밤의 한복판에서 나의 사춘기 시절을 더듬어봤다. 잠으로 밤을 지나칠 수 없던 날들이 얼마나 잦았던가. 그 숱한 밤을 넘어 나는, 분리되는 것이 아득하기만 했던 엄마와 아빠의 세상을 조금씩 벗어났다. 비로소 엄마 아빠를 결점과 모순 또한 존재하는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 역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때로는 두렵고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과 평생을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모르리라는 깨달음과, 그들 삶에서 나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나를 오히려 자유롭게 했다. 그들의 세상에서 태어난 나는 다시, 작은 알을 깨고 부화하는 중이었다. 그 뒤로도 세상은 수차례 나와 함께 혹은 나와 상관없이 탈바꿈했다. 내가 변한 것인지, 세상이 변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엄마도 아빠도 그들의 속도에 맞게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지도 몰랐다. 다 큰 어른처럼 보였던 그들 역시 성장하는 중이었다. 나의 사춘기 딸 또한 그 비밀을 깨닫고야 말았는지, 부쩍 늘어난 일상의 말다툼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반복한다. 나에 대한 서늘하고 잔인한 비판이 이어지다 감정이 서로 격앙될 때 아이는 소리친다.

“엄마, 제발 좀 자라라고!” (Mom, please grow up!)

당신도 나도 자라고 있다



내가 자라라고 부르짖지 않아도 눈에 보이도록 성큼성큼 자라나는 아이에게 나는 같은 말을 하지 못한다. 성장하라는 꾸짖음은 사춘기 딸들 몫이다. 의식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머물고 정체될 것 같은 어른이라 아이는 내게 더 강조하는 걸까. 좀더 자라야 한다는 부추김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직도 자라는 중 같아 차라리 홀가분하다. 아직 덜 큰 터라 비틀거리고는 있지만, 비틀비틀 자라는 중인 걸까. 사춘기 딸들 덕분에 부쩍부쩍 자라는 날들임을 끓이는 속만큼이나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런 거니, 아이야?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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