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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보이콧 재팬” SNS 항일운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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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좃토 맛테 구다사이!”(잠깐만 기다리세요!) 1905년 을사늑약을 강요한 이토 히로부미가 이랬을까. 우리 주일대사에게 호통치는 고노 다로 외무상의 태도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보았다. 오만방자와 적반하장이 배어 있는 언행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식민지 조선쯤으로 여기는, ‘식민 통치 36년은 합법’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행위임이 자명하다. 1953년 한일회담 일본 쪽 대표의 ‘조선 통치는 은혜를 베푼 일’이라는 망언은 실수가 아니다. 현재까지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인식의 실체이다.

21세기 일제에 맞서 우리 국민들은 일상 속에서 차분히 아이티(IT) 항일운동을 펼치는 중이다. ‘노(NO), 보이콧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디자인 로고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고, 이를 기발하게 변형한 밈(meme)은 공유 행동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일본여행 취소 인증샷은 소셜 세상의 대세 트렌드로, “1919년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2019년 일본 불매운동은 한다”는 강한 결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제품 대체재 웹페이지 개발자 김병규씨는 일본제철 가마이시 제철소에 끌려가 무임금 강제징용을 당한 이춘식 할아버지의 배상 판결에 공감하고자 ‘노노재팬’(https://nonojapan.com)을 만들었다. 일제의 불법행위를 몰랐던 이들에게 대응해야 할 역사적 과제까지 알려준 셈이다.

일본 불매운동이 이렇게 세련되고 이성적인 시민행동으로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라인 공간에서 정체성을 공유한 사람들이 소속감을 갖고 연대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뉴 파워>의 제러미 하이먼스와 헨리 팀스는 이를 ‘신권력 현상’으로 칭했다. 신권력은 행동에 옮길 수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확장 가능한 특징이 있다. 저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지도력과 조직화의 좋은 예로 우리나라 케이팝 팬사이트를 꼽았다. 일례로 지난해 방탄소년단의 소속사가 우익 성향이 짙은 야키모토 야스시와 협업한다는 보도자료를 내자 우리나라 아미(ARMY)들은 즉각 반발했다. 한국은 아직 일제강점기의 피해가 극심하고 우익과 전범국가에 대해 세계적으로도 단호하다는 이유로 해당 작업의 전량 폐기를 요구했다. 방탄소년단 팬들의 끈질긴 설득에 소속사는 결국 이 협업을 중단했다. 팬들 스스로의 정체성과 아티스트에 대한 열정을 연결해 운동으로 증폭시킨 결과였다.

일본 불매운동의 출발점인 ‘노, 보이콧 재팬’ 디자인과 ‘노노재팬’은 정보기술 커뮤니티인 ‘클리앙’에서 처음 알려졌다. 왜 이곳에서 시작되었을까. 주제 구분 없이 회원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이곳의 자유게시판에는 그동안 토착왜구와 매국언론에 관한 의견과 팩트 체크가 꾸준히 추천글로 올라왔다.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일본의 경제보복 발표 직후엔 회원 다수가 잇따라 일본 불매선언을 했고, 아이티와 디자인에 능한 회원의 참여와 지지가 늘어나면서 선언은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느슨한 소속감을 지닌, 동일 사안에 공감하는 다수가 ‘불매’의 형식과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부 언론은 여전히 ‘반일감정’은 득이 안 된다는 프레임을 생산하고 있다. ‘의병’ ‘죽창’ 등은 녹슨 무기라며 국민들의 결의를 조롱한다. 이런 기사와 악의적 댓글까지 번역해 팔아먹는 작태야말로 1세기 전 친일파 언론이 녹슨 펜을 휘둘렀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 ‘노노매국언론’ 웹페이지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겨레

최선영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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