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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사설]‘피의사실 공표’ 악습 고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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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울산지검이 수사 중인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 위반 사건에 대해 22일 ‘계속 수사’ 결정을 내렸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가 위조 면허증으로 약사 행세를 한 피의자의 확정되지 않은 혐의와 공개돼서는 안되는 증거까지 경찰이 보도자료에 담아 언론에 알린 것은 법 위반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심의위 결정 취지는 피의자의 인권과 개인정보 등은 법으로 엄격히 보호돼야 한다는 것으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피의사실 공표는 죄의 유무가 가려지지 않은 피의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여론재판이자 인격살인 행위다. 증거와 무죄추정 원칙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억울한 누명을 쓴 상황이라면 더욱 크다. 그 피해를 법에 호소해도 무시되기 일쑤다. 검찰과거사위원회가 2008~2018년 사이 접수된 피의사실 공표 사건 347건을 분석한 결과 기소에 이른 사례는 전무했다.

수사당국이 중대범죄를 저지른 현행범이나 공인에 대한 수사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공익 차원이나 국민의 알권리 보장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원칙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형법 등은 수사기관의 기소 전 피의사실 누설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토록 하고 있다. 피의자 신상공개도 중대범죄자로 확실한 증거가 있고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대법원도 충분한 증거와 무죄추정 원칙을 준수할 때만 피의사실 공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수사기관들이 ‘일상’처럼 피의사실을 흘리는 것은 ‘공보준칙’이라는 이름의 훈령을 통해 그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는 탓이다. 범죄재발과 오보·추측성 보도 방지, 공공안전과 국민 협조 등이 필요한 때는 수사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공보준칙은 형법과 배치되고,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효력도 인정되지 않는 게 우리 법체계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최근 피의사실공표죄의 엄격한 적용과 기소 전 공개할 수 있는 범죄 사실은 입법을 통해 해결하라고 권고했다. 법무부도 이달 중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정부는 예외규정은 세부기준으로 명확히 하고, 공개여부도 투명하게 하는 방향으로 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인격권 침해를 막을 수 있고, 국민 알권리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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