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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원료공급사도, 판매사도 ‘과실치사’…가습기살균제 책임 물어 34명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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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재수사 마무리…재판에 넘겨

생활용품에 기업 책임 넓게 적용

8개월에 걸친 검찰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재수사가 23일 마무리됐다. 제조사뿐만 아니라 원료공급사와 완제품 판매 회사까지 과실치사상 혐의를 폭넓게 적용한 첫 수사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이 점을 두고 “재수사의 큰 성과”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이날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 2차 수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시민단체 고발로 시작한 가습기살균제 재수사의 주요 대상은 SK케미칼과 애경이었다. 이들은 2007~2011년 흡입 독성원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으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판매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았다. 사망자 12명과 부상자 87명을 낸 가습기메이트는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검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SK케미칼과 애경, 이들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업체 관계자를 재판에 넘겼다. 수사 과정에서 사건 진상규명을 방해한 환경부 간부(경향신문 6월5일자 10면 보도),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등도 적발해 기소했다. 재수사로 총 34명(8명 구속·26명 불구속)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3년 전 옥시를 중심으로 진행된 1차 가습기살균제 수사를 재검토했다. 옥시에 흡입 독성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제공한 ‘원료공급사’ SK케미칼의 형사 책임을 물으려는 조사였다. 원료공급 기업에 인명 피해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지를 두고 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2016년 SK케미칼을 무혐의 처리한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모든 화학물질은 독성이 있는데 그 화학물질이 유통돼 잘못된 제품이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공급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재수사에 들어간 검찰은 원료공급사의 직접 과실부터 따졌다. SK케미칼 측이 기준치를 넘은 PHMG의 ‘어류 독성’(어류를 대상으로 한 독성실험) 수치를 옥시에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원료공급사가 화학물질이 인체에 유해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알고도 방치한 문제도 들여다봤다.

■ 옥시 영국본사 수사 못하고 정부 과실 책임 못 물어 ‘한계’

검찰 수사 결과 SK케미칼 전직 직원이 옥시에 독성원료를 추천했고, 2005년에는 SK케미칼 측이 가습기메이트 성분을 PHMG로 바꿔보자고 제안한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은 옥시에 대한 ‘원료공급자’로서 SK케미칼 관계자 4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SK케미칼에서 완제품을 받아 판매만 맡았다”고 주장한 애경 관계자 5명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애경 측 공소장에 인명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 민원을 부실하게 처리한 기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판매자들이 클레임을 무시하고 대규모 인명 피해도 방치한 것을 주의의무 위반으로 보고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원료공급사가 독성정보를 제대로 제공하고 판매사가 소비자 민원에 끝까지 대응하지 않으면 모두 엄격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도 기업들이 주의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경영이 위태로울 정도의 책임을 지는 일이 (이번 수사로) 본격화한 것”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도 이번 수사를 두고 “공급자, 제조사, 판매사는 제조물 관련 책임을 철저하게 이행하고, 정부는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며 “피해자들은 SK케미칼과 옥시에 공동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애경에 건강영향평가보고서 등 자료를 전달한 최모 환경부 서기관을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기소했다.

재수사 한계도 나왔다.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할 당시 대표를 맡은 최창원 전 대표이사 등은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임원급 중 기소된 인물은 제품 출시 당시 임원인 홍지호 전 대표이사뿐이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은폐한 핵심 피의자인 외국인 임원 거라브 제인은 외국으로 도망갔다. 인터폴에 수배된 상태지만 국내로 강제소환할 방법이 없다.

특조위는 옥시의 영국 본사·외국인 임직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점, 가습기 살균제 원료 인허가와 제품 출시 과정에서 정부 과실 부분에 책임을 묻지 못한 점을 재수사 한계로 지적했다. 특조위는 “기업 책임이 적지 않은데도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배·보상에 나서지 않아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고 했다.

윤지원·선명수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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